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차별인지도 모르던 때…女대법관 긴즈버그의 통찰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블랙피쉬 펴냄





지난 2019년 개봉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포스터는 단연 눈에 띈다. 무채색 양복을 차려 입은 남자들의 뒷모습 한가운데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한 여성이 당당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배우 펠리시티 존스가 연기한 이 여인은 지난해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다. 얼굴 절반을 가리는 커다란 뿔테 안경과 단정한 쪽머리로 익숙한 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이다. 포스터가 말해주듯 긴즈버그는 평생을 ‘남녀가 사회에서 동등한 입지에 서야 헌법이 모두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으며 차별 받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애썼다.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경험한 당사자로서 긴즈버그는 여성 뿐만 아니라 특정 인종·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맞섰다. 신간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는 멀게는 40년 전, 가깝게는 7년 전 쓰여진 긴즈버그의 판결문과 의견서 등 총 13개 사건의 기록을 담았다. 그 안엔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 그녀의 바람과 신념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책은 미국 재판사에서 손꼽히는 주요 사건과 이에 대한 긴즈버그의 판결문( 또는 의견서)을 소개한다. 대표적인 것이 1996년 ‘미국 대 버지니아 사건’의 판결문이다. 군사 대학인 버지니아 밀리터리 인스티튜트(VMI)의 여성 입학 금지 정책을 꺾은 이 판결문에서 긴즈버그는 말한다.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관련된 일반화는 대부분의 여성에게 적합한 내용을 추산한 것이며 평균을 넘어서는 재능과 능력을 지닌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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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이 사건 외에도 차별이 차별인지도 모르던 때, 긴즈버그가 통찰의 눈으로 써내려 간 기록이 소개된다. 아들이 사망하자 전 남편에게 재산 집행권이 넘어간 주부, 수십 년간 같은 직급의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은 직장인 등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임신·출산의 자유, 선거권과 시민권과 관련한 재판에서 긴즈버그가 펼친 생각을 만나볼 수 있다. 참고로 그녀는 책에 소개된 13개 사건 중 7건에서 소수 의견을 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본문이 실제 사건의 판결문이나 의견서를 발췌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장 서두에 코릿 브렛슈나이더 브라운대 정치학과 교수의 사전 해설이 정리돼 있어 이해를 돕는다.

책 1장 바로 앞에는 1993년 긴즈버그가 미국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한 발언이 실려 있다. ‘사실 저는 죽기 전에 고등법원 판사석에서 여성을 셋, 넷, 혹은 그 이상 보고 싶습니다. 같은 모습을 한 여성이 아니라 피부색이 다른 여성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1만 5,000원.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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