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부동산 투기가 '아내의 일'이 된 까닭은

[책꽂이-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최시현 지음, 창비 펴냄

젠더 불평등 만연 자본주의 시장서

여성 경제력 증명 주요수단 부상

'가족 행복' 명분으로 편법도 불사

되레 가부장제 강화·투기 심화 등

사회적 불평등 고착화 역효과 불러

서울 강남구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서울 강남구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대변인이던 2019년 3월,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며 내놓은 설명은 “아내가 저와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되면서 관사에 입주했고, 원래 살던 전셋집 보증금에 대출을 얹어 서울 흑석동의 건물 한 채를 매입했다. 보유 자산의 두 배를 웃도는 대출을 받은 데다 건물이 위치한 곳이 뉴타운 재개발 예정구역이라는 점에서 투기적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 와중에 당사자인 김 전 대변인의 대응은 ‘책임 미루기’로 비치기 충분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투자는 흔히 여성의 영역으로 간주되곤 한다. 과거 기혼 남성이 배우자를 가리킨 ‘집사람’이라는 호칭에는 집과 관련된 많은 영역을 여성이 담당하던 역사적 맥락이 담겨 있는데, 부동산 투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여성학자인 최시현 연세대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신간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에서 ‘내집 마련’은 “여성들이 젠더 불평등한 자본주의 시장사회에서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갖기 위한 몇 안 되는 수단이었다”고 말한다.책은 여성주의 담론을 통해 부동산 문제가 여성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여성들이 부동산에 몰두한 과정과 이유를 분석한다. 연구를 위해 만난 1950~1980년대생 중산층 여성 25명과의 다채로운 인터뷰는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저자는 애초 도시 핵가족 체제에 한국의 부동산 정책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려 했으나, 취재 과정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주제를 바꿨다고 한다.

197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모습. /사진 제공=창비197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모습. /사진 제공=창비



저자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부동산을 향한 높은 관심은 산업화와 가부장제, 중산층이 되고 싶다는 열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다. 과거 남편의 월급을 아껴서 재산을 불리던 ‘알뜰 주부’들은 1980년대 주식 호황과 집값의 폭등으로 새 기회를 얻는다. 내집 마련을 위해 부동산 투자를 했다가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기는 일이 생겼고, 이는 ‘좋은 엄마’, ‘버젓한 중산층’, ‘모범가족’의 지위를 굳히는 주요 수단으로 부상했다. 여성들은 부동산 투자로 자신의 경제적 생활력을 증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부부 관계에서도 권력의 변화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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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동산 투기는 사회적 지탄을 받을 수 있는 ‘더러운 일’이었고, 이를 주도한 중산층 여성들은 ‘복부인’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게 됐다. 책은 이를 가리켜 “이미 불거진 투기 문제를 약자인 여성의 탓으로 돌려 그 심각성을 사소하게 만드는 고도의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여성들의 부동산 투자 과정을 통해 어떻게 투기를 내면화하고 정당화했는지 분석하고, 가족의 행복과 계급 상승을 위해 편법도 불사하는 중산층 여성들이 어떻게 명의신탁, 조세 회피 등 일그러진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게 됐는지도 가감 없이 전한다. 또한 투자의 결과가 남편과 자녀를 위한 것으로 귀속됨에 따라 여성들 스스로 가부장제와 전통적 가족주의 강화에 일조했으며 투기 심화도 자초했다고 지적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복부인’ 포스터. 복부인이란 말은 부동산에 투자하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표상하는 단어였다. /사진 제공=창비임권택 감독의 영화 ‘복부인’ 포스터. 복부인이란 말은 부동산에 투자하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표상하는 단어였다. /사진 제공=창비


저자가 다다르는 결론은 ‘여성이 투자에 성공하더라도 가부장적 계급 구조에서 탈출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여성이 계급적 자원을 이용해 투자해도 온전히 자기 역량의 성장이나 개별적 자율성의 획득으로 이어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며 투기적 행위의 효과로 사회적 불평등은 고착화됐다고 지적한다. 책은 중산층 여성의 부동산 투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가족을 위한 욕망이 반사회적 결과를 초래하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이를 타개할 새로운 윤리의 필요성을 독자에게 역설한다. 2만 원.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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