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법관제도를 기존 가사·소년 사건에서 의료 분야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법조일원화제도에 따라 법관 전문성을 한층 높인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수술실 폐쇄회로(CC)TV 도입 등으로 의료 분쟁이 첨예해질 수 있다는 점도 의료 분야 전문 법관 도입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산하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오는 8일 회의를 열고 ‘전문 법관 확대 방안’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상정 안건에는 의료 전문법관제도를 서울중앙지방법원부터 시범 도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전국 법원으로 차츰 확대하는 방식이다. 위원들은 판사와 변호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와 자체 연구 등을 통해 의료 분야부터 도입하는 방향으로 최종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법관제도는 법관이 특정 분야를 담당하도록 하고 동일 법원에서 장기 근무를 보장해 판사들의 전문성을 도모하는 제도다. 그동안 법원 내부에서는 노동·형사·도산·건설 등 분야에 전문 법관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오갔다. 위원들은 앞서 지난 6월 회의에서 법원 내 선호·비선호 분야의 형평성을 고려해 의료 분야부터 우선적으로 전문 법관을 시범 실시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대법원이 의료 분야부터 전문법관제도를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매년 2,000건 이상의 의료 분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의료 분야 분쟁의 경우 고도의 지식이 요구돼 법조계 내에서 ‘전문성 강화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올 4월 발표한 ‘2020년 의료 분쟁 조정·중재 통계연보’에 따르면 의료 분쟁 조정 신청 건수는 △2016년 1,907건 △2017년 2,420건 △2018년 2,926건 △2019년 2,824건 △2020년 2,216건으로 집계됐다. 해마다 2,000건가량의 의료 분쟁이 발생하는 셈이다. 대법원도 앞서 2015년 의료 사건 재판 심리에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문심리관제도’를 추진한 바 있다.
여기에 법조 일원화 조치로 신규 판사 임용 필요성이 높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법원 안팎의 대체적 시각이다.
윤찬영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올 6월 열린 ‘법조 일원화와 법관 임용제도 개선 방안’ 학술대회에서 “장기적으로 완성된 법조 일원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을 법관으로 임용해야 한다”며 “직무별로 법관을 선발해 해당 전문 분야에서 장기간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사·소년 사건 등 분야에서 전문법관제도가 안정적으로 안착했다는 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 점으로 꼽힌다. 현재 운영 중인 전문 법관은 2005년 도입된 가사·소년 전문 법관이 유일하다. 비선호 부서 중 하나로 꼽혔으나 전문 법관 도입과 함께 5년에서 최대 7년까지 가정법원에서 근무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며 자체적으로 이혼 가정 비대면 화상 면접 교섭 서비스 등을 추진하는 등 안정적으로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의료 분야는 살펴야 할 기록이 많고 기록 자체도 매우 어려워 노동 강도가 높기로 손꼽히는 곳”이라며 “의료 분야부터 전문법관제도를 도입해 법관 스스로 전문성을 높일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인사이동 시 원하는 법원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인센티브 등이 간접적으로 제공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의료 전문 법관 도입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한 판사가 사건을 담당하면서 의료 분쟁을 둘러싼 시시비비가 한층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치과의사 출신으로 부장판사를 지낸 하태헌 세종 변호사는 “의료 사건의 경우 과실을 인정하는 기준이나 위자료를 인정하는 기준이 판사에 따라 바뀌기 쉬웠다”며 “전문 법관이 도입되면 일관된 기준이 정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 권대희 사건의 소송 대리인 박호균 히포크라테스 변호사도 “의료 사건 경험이 쌓인 판사가 사건을 다루면 진행 속도도 빨라지고 심리의 깊이도 달라질 것”이라며 “의료 사건과 관련해 판례가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만큼 기준 정비도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