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아시안 혐오는 끝나지 않았다

◆김영필 뉴욕특파원

먹던 음식물 던지거나 묻지마 폭행

팬데믹 이후 증오범죄 크게 늘어나

개학 앞둔 亞 학생들 괴롭힘 불안 커

총영사관 자국민 보호 적극 나서야





A는 네 살배기 여자아이다. 인도에서 왔다. 큰딸과 같은 프리스쿨(유치원)에 다닌다. 엄마들끼리 친해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는데 얼마 전 A에게 속상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A가 친구 B와 노는데 C가 B에게 “블랙(검은 아이)과 놀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고작 네 살짜리 아이들이 피부색을 구분하고 인종차별을 한다니. 이 얘기를 듣고 화가 났다. 큰아이에 대한 걱정도 생겼다. 아시안이라고 놀림을 받지 않을까 해서다. 따지고 보면 A도 아시안이다.

지난 3월 한국계 뉴저지주 하원 의원인 앤디 김과 그의 다섯 살 난 아들에 관한 기사가 현지 매체에 나온 적이 있다. 같은 학교의 누군가가 김의 아들에게 “차이니스 보이(중국에서 온 아이)”라고 불렀나 보다. 그의 아들은 당황했고 “나는 뉴저지 보이(뉴저지 출신)”라고 답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아시안들에게 ‘차이니스(중국인)’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인종차별이다. 아시안을 구별하지 않고 얕잡아 부를 때 쓰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미국에서 증오 범죄가 급증했다.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아시아계를 향한 공격 행위는 2019년 158건에서 지난해 274건으로 73.4% 폭증했다. 지난 주 뉴욕경찰은 맨해튼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서 20대 아시안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자신이 먹던 음식물을 집어던진 여성을 붙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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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지기는 했지만 동포 사회의 불안감도 여전하다. 퀸스에 홀로 거주하는 70대 여성 D 씨는 지금도 혼자 마트에 가지 않는다. 안전 문제 때문이다. 40대 자식들이 집까지 식재료를 가져다준다. 7월 말에는 한인 단체장들이 플러싱에서 ‘묻지 마 폭행’을 당했다. 기자도 가급적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아시안 증오를 대하는 온도 차이다. 혐오 범죄가 극성을 부릴 때 총영사관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오래 산 분들의 말을 들어보니 인종차별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며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미국 사회가 백인 중심인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식의 언급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백인 주류 사회와 미디어가 소수민족 사이의 갈등을 부추긴다는 분석이 많다. 그럴싸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당장 유튜브에서 동영상 한두 개만 찾아보면 된다. 상점이 난장판이 되고 지하철 선로에서 떠밀리며 대낮에 길거리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이들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히스패닉들이 아시안을 차별하는 것도 백인들의 가스라이팅인가.

코로나19 이후 미국에서의 아시안 혐오는 생존의 문제다. 실업과 마스크 착용, 감염에 대한 공포가 폭력을 불러온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적어도 생사가 걸린 이들에게 ‘지적 놀음’은 맞지 않다.

미국은 노동절(6일) 연휴가 지나면 본격적인 개학이다. 뉴욕과 뉴저지를 비롯한 주요 주들은 대면 수업이 원칙이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아시안 학생들이 걱정하고 있다. 교육 전문 매체 초크비트(Chalkbeat)는 “증오 범죄가 폭증한 후에 일부 아시안 아메리칸 학생들이 학교로 되돌아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기사를 냈다. 코로나19보다 동급생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이 더 무섭다는 얘기다.

뉴욕 주재 일본 총영사관 홈페이지에는 “일본인 공동체를 보호하는 일이 영사관의 우선순위”라며 “미국 내 모든 아시안 공동체를 겨냥한 모든 형태의 폭력과 차별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있다.

그렇다. 영사관의 임무는 정무나 외교가 아니라 재외국민의 생명과 신체·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다. 한국도 외교부와 총영사관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시안 혐오는 끝나지 않았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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