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금감원 미팅, 9개월 후에 오세요"…증시 호황에 투자자문사 260개 설립 대기중

자문사, 공모운용사와 달리 등록제

자본금·인력 요건만 갖추면 허가

절세혜택 노린 슈퍼개미까지 몰려

금감원 조사역 2명…병목현상 심각

"이대로면 등록까지 1년 걸릴수도"





금융투자회사 고위 임원을 지내다가 지난해 퇴직한 A 씨는 최근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투자자문사를 설립하려다가 깜짝 놀랐다. 투자일임회사 등록 요건에 맞춰 자본금, 법인 설립, 전문 인력 확보까지 마치고서 사전 면담을 위해 금융감독원에 연락을 했더니 “내년 5월에 1차 미팅을 갖자”는 답이 돌아왔다. A 씨 앞에 약 260명이 투자자문사 설립을 위해 줄을 선 상태라는 것. 금감원 면담을 하더라도 부족한 서류를 보완한 후 금융위원회에 정식 등록 절차를 밟으려면 추가로 2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A 씨는 “평소에 아무리 길어도 4~5개월이면 가능했던 자문사 등록이 이제는 1년은 족히 넘게 걸릴 것 같다”며 “금융업권에서 약 30년의 경험을 가진 전문성을 바탕으로 창업을 준비했는데 이는 해도 너무한 상황”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사상 유례 없는 투자자문사(자문·일임업) 설립 붐이 일고 있다. 6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까지 약 260곳의 법인이 전업 투자자문사 등록을 위해 금감원에 사전 면담을 신청했다. 이는 현재 영업 중인 247곳보다 많다.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기업공개(IPO) 때 기관 배정 물량을 받으려는 목적이 투자자문사 설립 러시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오는 2023년부터 부과되는 금융투자소득세를 아끼려는 ‘큰손’ 개인이 직접 투자자문사를 차리는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60곳 대기…심사 ‘병목현상 ’ 심각=투자자문 및 일임업은 인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자본금 및 전문 인력 요건 등만 갖추면 등록할 수 있다. 자문만 해주고 매매는 투자자가 직접하는 투자자문업의 경우 다루는 상품에 따라 자본금이 1억 원 또는 2억 5,000만 원에 전문 인력을 1명 이상 보유하면 된다. 자금을 고객들로부터 일임 받아 매매까지 알아서 해주는 투자일임업의 경우 문턱이 다소 높다. 자본금은 전문 투자자만을 대상으로 영업할 경우 5억 원, 일반 투자자까지 대상으로하면 15억 원이다. 또 전문인력 2명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이 같은 요건을 갖춰 금감원과 사전 면담을 통해 부족한 서류를 보완하면 금융위원회에 정식 등록 신청을 할 수 있다. 금융위는 다시 이를 금감원에 등록 심사를 의뢰해 문제가 없으면 등록 사실을 공고한다. 과거 이 같은 절차는 증시 불황기에는 2~3개월, 평소에는 3~4개월이면 끝났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증시가 활황을 띠면서 투자자문사 설립 신청이 급증하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 상태다. 반면 금감원에서 자문사 등록을 담당하는 직원은 조사역 2명에 불과한데다 코로나19로 대면 면담에 제약이 생기면서 ‘병목현상’이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초 면담을 신청한 법인들도 아직 등록을 마치지 못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반기에 많을 때는 하루 10곳 넘게 신청하기도 했다”며 “등록제이기는 하지만 등록을 남발했다가 불법 영업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서류를 꼼꼼하게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IPO 기관배정 노린 수요 급증”…양도세 절세 목적도=투자자문사 설립 러시 배경에는 ‘IPO 대박 신드롬’이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청약 주식의 50%에 해당하는 증거금을 납입해야 하는 개인 투자자들과는 달리 기관투자가들은 증거금 없이 청약에 참여할 수 있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SK바이오팜·카카오게임즈 등으로 작은 투자자문사들이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을 벌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자문사를 설립이 인기를 끌었다”며 “최근 들어 기관투자가들이 급증하면서 경쟁률이 치솟은데다 공모주 수익률도 갈수록 꺾이면서 ‘이제는 끝물’이라는 인식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만약 내년에 현재 신청한 곳이 모두 자문사 등록을 마치면 전업 투자자문사가 500곳이 넘게 된다. 투자자문사는 2019년 3월 말 184개사 였으나 2020년 3월 201개로 17개 사가 증가했으며 2021년 3월 기준 228개로 연간 20~30곳 정도가 늘어왔다. 그러다가 4개월만인 7월 말 19곳으로 증가했다.

이 외에도 양도세 절세 목적으로 큰손 개인 투자자들이 자문사를 설립하기도 한다. 2023년부터는 인당 연간 5,000만 원 이상의 주식 투자 이익을 낼 경우 양도소득세율 22%를 적용한다. 그러나 투자자문사를 세우면 법인 비용 명목으로 자동차 리스, 임대료, 식사비 등 다양한 비용을 털 수 있어 세금을 아낄 수 있다. 현재 법인세율은 과세표준 2억 원 이하 10%, 2억 원 초과~200억 원 이하 20%, 200억~2,000억 원은 22%다.

◇“일부 투자자문사 불법 IPO 투자도”=투자자문사 설립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가운데 일부 투자자문사들 사이에서는 불법적인 투자도 성행하고 있다는 게 다수의 자문사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투자자문사가 회삿돈으로 IPO에 청약해 돈을 버는 일을 못하게 돼 있기 때문에 A 자문사는 B 자문사로, B 자문사는 C 자문사로, C 자문사는 A 자문사로 고유 자금을 맡겨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는 식이다. 공모주를 받아 상장 이후 수익이 나면 바로 팔아서 남기는 식이다.

또 투자일임업자만 공모주 청약에 기관투자가로 참여할 수 있음에도 투자자문사들이 암암리에 물량을 받아가는 일도 있다고 한다. 한 투자일임회사 대표는 “이른바 ‘고유 자금 바터’를 통해 다수의 회사가 불법적으로 돈을 벌고 있지만 금융 당국이 전혀 감독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투자자문사들은 고객 돈 운용보다는 ‘자기 돈’을 굴려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에 따르면 투자자문사들의 지난해 4월~올해 3월까지 1년간 고유재산운용손익이 총 2,792억 원이었으나 수수료 수익은 1,928억 원에 그쳤다.


이혜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