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시로 여는 수요일]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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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서로 모르다가, 서로 알아가며 설레셨겠지요. 영원을 맹세하며 별도 달도 여럿 따셨겠지요. 알면 알수록 달라서 다투셨겠지요. 다툴수록 놓아주니 나란히 걷게 되셨겠지요. 기억의 진주와 망각의 포말 사이 누구라도 우두커니가 되겠지요. 기억이 알아가던 기쁨이라면, 망각은 알다가도 모를 신비는 아닐는지요. 기억이 사라진들 앞산 무지개가 없던 건 아니겠지요. 나비가 꽃을 잊은들 꽃이 거짓은 아니었겠지요. 너무 멀어서 그리웠고, 너무 가까워서 먼 당신과 나 사이 우주.

- 시인 반칠환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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