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코로나19 감염이 줄어야 반도체 부족 이슈가 해결되기 시작할 겁니다.”
지난 6일(현지 시간) 독일 뮌헨의 'IAA 모빌리티 2021' 현장.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경제 매체 CNBC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도 결국은 코로나19가 잠잠해져야 해결의 출발점을 찾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솔직히 올여름 휴가철이 지나면 반도체 공급 문제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공장 여러 곳이 문을 닫았고 폭스바겐의 기대도 무너졌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독일 자동차 회사와 말레이시아 코로나19가 무슨 상관이 있나 싶을 것이다. 그러나 배경을 조금만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량의 7%가 말레이시아를 거쳐간다.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대만 같은 반도체 강국은 아니지만 패키징 등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말레이시아에서 코로나19가 급속 확산돼 6월 1일 전국 록다운이 선포됐고 여러 공장이 수일에서 수주 동안 문을 닫았다. 이 여파로 폭스바겐뿐 아니라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체 업체의 조업 축소가 길어졌다.
현재 제조업의 글로벌 분업 체제는 이처럼 고도화돼 있다. 전 세계의 자본·원자재·반제품뿐 아니라 각국의 생산 시설과 인프라는 물론 노동력까지 복잡한 네크워크로 연결돼 효율을 추구한다.
그러나 분업이 고도화할수록 한 곳만 삐끗해도 전체가 엉망이 되는 문제가 생긴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부터 “세계가 불필요할 정도로 먼 곳에서 물건을 만들고 실어 나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고도화된 국제 분업 체제, 즉 글로벌 공급망을 단기간에 뜯어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며 팬데믹 이후를 생각하면 불필요한 일이다.
현재 이런 종류의 글로벌 공급 부족은 반도체 분야뿐 아니라 사실상 전 제조업과 원자재 분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사태 장기화의 배경에는 코로나19로 발생한 각국의 노동력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말레이시아처럼 공장 폐쇄로 여러 사람이 일손을 놓아야 하는 곳도 있고 미국처럼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감수하고 익숙하지 않은 새 일자리를 찾아 나서느니 실업수당으로 버티겠다는 사람이 많은 나라도 있다.
디스 CEO의 진단으로 돌아가보자. 코로나19 감염이 줄어야 문제가 풀린다는 그의 예상이 맞는다면 세계가 공급망 위기에 따른 상품 부족과 물가 상승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백신을 나누는 것뿐이다. 백신을 빠르게 보급한 선진국들만 ‘위드코로나’ 모드로 전환한다고 해서 풀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