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25년까지 총 20조 원 규모로 조성되는 정책형 뉴딜펀드와 소재·부품·장비펀드가 세제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출시된 것으로 파악돼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뉴딜펀드 운용본부장의 ‘청와대 낙하산’ 논란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과세표준 산정 방식 등 기본적인 세제 인프라에서도 ‘관제 펀드’의 허점이 노출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13일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국내 자산운용 업계에서 “현행 과세 제도를 적용하면 정책형 뉴딜펀드의 과표를 산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이 지난해부터 금융위원회·국세청 등 정부 관련 부처를 찾았지만 확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표 산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뉴딜펀드 같은 ‘손익차등형 펀드’에 대해 마땅한 과표 산식이 소득세법 법령에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손익차등형 펀드란 수익증권을 선순위·후순위로 분리한 펀드를 말한다.
보통 선순위에는 일반인, 후순위에는 정부·공공기관·기관투자가 등이 투자자로 참여한다. 후순위 투자자는 선순위 투자자의 수익 혹은 손실을 특정 수준까지 보장해주는 대신 수익률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선순위 투자자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게 된다. 국내에서는 뉴딜·소부장펀드를 비롯해 일부 사모 메자닌펀드가 이 같은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현 소득세법에 규정된 방식대로 손익차등형 펀드를 계산할 경우 과표를 제대로 매기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후순위 투자자의 순자산이 0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내야 하거나 선순위 투자자에 보장해준 이익이 비과세 처리되는 등 과표 계산상 여러 모순점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제에 구멍이 난 상황에서 최근 펀드 운용 경험이 전혀 없는 전 청와대 인사가 뉴딜펀드 담당자로 내정되면서 정책 펀드 운용을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수십조 원이 투자될 정책형 뉴딜펀드가 전반적인 운용 프로세스에서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며 “정부가 출시에만 급급해 펀드를 만든 결과”라고 지적했다.
과표 산정 기본도 못갖춰...운용업계 "손실때도 소득세 낼 판"
정부가 추진 중인 뉴딜펀드의 과세표준 산정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국내 자산운용 업계가 자칫 ‘세금 폭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이유는 현행 소득세법 시행령·시행규칙상에 나와 있는 ‘좌수(지분)비례방식’을 손익차등형 펀드에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산운용 업계에서는 “정부가 뉴딜·소부장펀드를 만들 때 어떻게 세금을 계산할지도 당연히 고려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는 2025년까지 20조 원 규모로 조성할 예정인 뉴딜펀드와 이미 조성액이 1조 원에 달하는 소부장펀드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과세 기준마저 제대로 구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자산운용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펀드 과세표준을 계산할 때 좌수비례방식을 사용한다. 소득세법 시행규칙 제 13조 4항에서 ‘좌당’ 배당소득을 기준으로 투자자별 과세표준을 매기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펀드 순자산 총액에서 주식 매매 차익 등 과세 제외 소득을 뺀 후 각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펀드 좌수별로 과세표준을 계산해주는 식이다. 투자자별 지분에 비례해 과세표준을 산출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 산식을 손익차등형 구조에 적용하면 과세표준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다고 우려한다. 과세 대상 순자산과 실제 순자산이 불일치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더구나 좌수비례방식에서는 삼성전자 등 상장 주식 매매 차익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선·후순위 투자자에 대한 과세 배분상 모순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정한 과세표준 기준가를 산정하려고 해도 법적으로 기준이 없어서 산출을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일반 펀드에서는 과세표준뿐 아니라 손익도 지분에 따라 배분하기 때문에 지분비례방식을 적용해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뉴딜펀드 등 손익차등형 펀드는 후순위 투자자가 선순위 투자자에 대해 손익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지분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올해 초 공모에 들어갔던 정책형 뉴딜펀드의 경우 정부·운용사가 후순위로 전체 펀드 자금의 21.5%를 대고 나머지는 일반 투자자가 선순위로 들어가는 구조다. 펀드 만기 시 손실이 발생하면 후순위 투자자가 손실률 21.5%까지는 일반 투자자들에게 자기 자금을 대 손실을 보전해준다.
대신 기준 수익률(20%) 초과분에 대해서는 후순위 투자자(정부·운용사)와 일반 투자자가 6 대 4의 비율로 배분받게 된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나 유경PSG자산운용도 운용사·기관투자가 등이 후순위 투자자로 참여해 손실을 보장해주는 손익차등형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손익차등형 펀드에 손실이 났을 때 후순위 투자자가 과도하게 세금을 무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총원금이 1만 원이고 선·후순위 투자자가 각각 9 대 1의 비율로 출자한 손익차등형 펀드에서 채권 이자소득 500원, 그리고 삼성전자 주식 매매 손실 2,500원이 발생한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여기서 후순위 투자자가 선순위 투자자의 손해를 메꿔주는 과정에서 순자산이 0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여기에 좌수비례방식을 적용하면 과세표준으로 매긴 순자산은 1만 500원으로 실제 순자산보다 커지는 문제가 생긴다. 삼성전자 손실 2,500원이 빠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좌수에 따라 그대로 세금을 배분하는 것은 똑같아 결과적으로는 후순위 투자자는 순자산이 고갈됐음에도 채권 이자 소득에 세금을 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뉴딜펀드의 경우 손실이 커진다면 후순위 투자자로 참여한 국책은행들이 ‘왜 손실이 났는데 세금을 내야 하냐’며 과세표준을 계산해준 자산운용 업계에 책임을 돌릴 수 있다”며 “손실이 났음에도 세금을 내야 하는 주체는 생기는데 과세 기준은 없다 보니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후순위 투자자가 선순위 투자자에게 이익을 보장해주는 경우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펀드가 아무런 손익을 보지 않은 상황에서 후순위 투자자가 매년 5%씩 수익을 보장해주면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걸로 처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후순위 자금을 선순위에 옮긴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모펀드에서 이 같은 구조를 불법 증여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업계에서는 각 선·후순위 투자자별 순자산에 비례해 과세표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황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에서 뉴딜·소부장펀드를 적극적으로 밀었으면 그에 대한 세제상 지원이 수반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국세청 관계자도 “해당 건에 대해 논란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며 “다만 해당 내용이 소득세법 시행규칙 조항에 해당하는지는 살펴봐야 해 기획재정부와 이 건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뉴딜·소부장펀드의 ‘정치성’으로 인해 애꿎은 자산운용 업계가 유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뉴딜펀드 운용을 총괄하는 한국성장금융에 황현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투자운용2본부장으로 오며 ‘낙하산’ 논란까지 일고 있어 ‘관제 펀드’의 정치 리스크에 민감해하는 모습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뉴딜펀드 운용 담당자로 청와대 낙하산 인사까지 거론되는 판국”이라며 “정권이 바뀌고 나서 나중에 과세표준 문제를 국세청이 거론하면 수익자들도 난리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2023년부터 금융투자소득세가 도입되면서 주식 매매 차익도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해당 안건을 세법 개정으로 갈 필요가 있을지는 의견이 갈린다. 문성훈 한림대 경영학과 교수는 “뉴딜펀드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국민 참여를 독려하는 상품인 만큼 필요하다면 세법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일반 투자자의 손익 여부도 따져봐야 하는 데다 금투소득세 도입 이슈도 있어 세법 개정의 실익이 얼마나 클지는 고려해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벤처기업 주식에 대한 비과세 특례 종료 여부, 2022년까지의 과세표준 처리 방식 역시 논란거리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