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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민지 별명 영광...20승 목표 이루려면 아직 갈길 멀어요"

[이사람]KLPGA 2021 시즌 '대세' 박민지

2017년 데뷔후 매년 꾸준히 1승씩 기록

"저 선수는 1승 밖에 못해" 댓글에 자극

우승하자 마음먹고 경기하니 더 잘돼

최단기간 6승·시즌 상금 13억 돌파 등

역대급 성적으로 연말 최우수선수 예약

노력한 만큼 결과로 나타나는 게 골프

긴 시즌 안지치게 쉴때는 철저히 쉬죠

버디를 잡았을 때 갤러리들에게 인사하듯 모자챙을 잡고 포즈를 취한 박민지. 그는 코로나19가 진정돼 코스에서 관중과 다시 호흡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버디를 잡았을 때 갤러리들에게 인사하듯 모자챙을 잡고 포즈를 취한 박민지. 그는 코로나19가 진정돼 코스에서 관중과 다시 호흡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 국내 여자 골프계의 키워드는 ‘또민지’와 ‘민지처럼’이다. 여기서 ‘민지’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5년 차 박민지(23·NH투자증권). 우승이 너무 잦다 보니 “또 민지가 우승했냐”는 말이 골프 팬과 관계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퍼지면서 ‘또민지’라는 별명이 생겼다. ‘민지처럼’은 투어에 새로 자리 잡은 현상이다. 동료들이 “민지 언니처럼”을 구호 삼아 저마다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른바 ‘또민지 효과’다. 심지어 남자 투어 대회 우승자도 “‘제2의 박민지’가 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화제의 중심 박민지를 최근 만났다. 그는 “다른 선수들이 내 이름을 언급해주고 동기부여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며 “지금처럼 계속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박민지를 이겨야만 우승’이라는 얘기가 선수들 사이에 돈다는 말에는 “저를 이겨야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높은 위치에 있어 많은 언니·동생들이 저를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니까 정말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 생활을 통틀어 올해가 가장 행복한 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기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로는 무엇보다 상금으로 말하는 법인데 박민지는 지난 12일 대회에서 공동 4위 상금을 보태 KLPGA 투어 역대 한 시즌 최다 상금 기록을 세웠다. 9개 대회나 남은 14일 현재 시즌 상금이 약 13억 3,330만 원이다. “모양이 예뻐서 좋아한다”는 숫자 3도 4개나 들어 있다. 앞서 최단 기간 6승(3개월), 최단 기간 시즌 상금 11억 원 돌파 등의 기록 또한 작성한 박민지는 2007년 신지애가 세운 한 시즌 최다 승 기록 9승도 그리 멀지 않다. 1승을 더해 7승이면 한 시즌 최다 승 공동 2위(2016년 박성현)가 된다. 올 시즌 상금과 다승 부문에서 압도적 1위이고 최우수선수(MVP)를 뽑는 대상 포인트도 선두라 연말 시상식의 주인공 자리를 예약해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체 시즌의 3분의 1을 남기고 6승이나 챙겼으니 이미 할 만큼 한 것 아니냐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박민지가 가장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하고 또 노력할 거예요.” 장차 20승까지 가보는 게 목표니까 통산 10승의 그는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다. 박민지는 “우승해야겠다고 생각을 해야 더 잘 치는 것 같다. 욕심을 부려야 간절함이 생기고 그게 우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올 시즌 퀀텀 점프의 비결도 여기에 있다. 박민지는 “지난 시즌과 올 시즌의 차이도 간절함이다. 그래서 6승을 거뒀고 데뷔 후 최고 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17년 데뷔 해부터 지난해까지 시즌마다 1승씩을 올리는 꾸준한 선수였으니 간절함이 그리 크지 않았을 것 같은데 박민지는 반대였다. 지난해 10월 협회지 인터뷰에서 그는 “‘저 선수는 매년 1승밖에 못해. 그게 저 선수의 끝이야’라는 댓글을 보고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제가 1년에 여러 번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5월 시즌 2승을 거둔 뒤 “1년에 1승밖에 못한다는 말씀을 해주신 분께 고맙다. 큰 자극과 동기부여가 됐다. 앞으로도 폭포가 쏟아지듯 우승을 하면 좋겠다”고 당차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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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은 경험은 또 있었다. 지난해 올스타 이벤트 대회 성격의 박인비 인비테이셔널에 참가한 박민지는 대회 전 룰 미팅 때 칠판에 적힌 ‘244’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참가 선수의 우승 횟수 합계였는데 그는 “당시 나는 3승밖에 없었다. 언니들에 비하면 먼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에서 강한 열정이 끓어올랐다”고 돌아봤다.

해외파 선배들이 출전한 지난주 대회 기자회견에서 박민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1년 전에 먼지였다면 지금의 박민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박민지는 “그때 ‘244’라는 숫자를 보고 ‘나는 진짜 멀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올해는 그나마 조금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먼지에서 나아가) 건더기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며 웃었다.

박민지의 볼 마커(그린에서 볼을 들어 올릴 때 볼이 있던 자리에 놓는 동전 등의 물체)에는 ‘MJ’가 선명하게 새겨 있다. ‘민지’의 영어 이니셜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이니셜과도 같다. 조던을 언급하자 박민지는 “확실히 의미가 있다”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난해 조던의 황금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에 빠져들어 밤을 새워가며 봤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는데도 더 잘하려고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한계를 넘어선 조던의 모습을 보고 마음 깊은 곳에서 불이 일어났다고 한다. 마음속 불을 가지고 박민지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주 5회 출근 도장을 찍은 결과 1개도 어렵던 턱걸이를 한 번에 7개씩 하게 됐다. 샷 거리와 지구력이 늘어 플레이가 단순해지고 긴 시즌이 힘들지 않게 됐다. 박민지는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로 나타나는 게 골프인 것 같다”고 했다.

좋아하는 아이템인 볼 마커를 보여주는 박민지.좋아하는 아이템인 볼 마커를 보여주는 박민지.


시즌이 긴 만큼 매주 불 같은 열정으로 자신을 몰아붙이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요즘의 박민지도 스스로에 대한 압박 강도를 조금 줄이고 여유를 가지려 한다. “1승에 매달리는데 못하면 계속 스트레스잖아요. 그래서 ‘괜찮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려 해요. 지금도 나쁘지 않으니까 코스에서 일부러 더 많이 웃자는 마음가짐이고요.” 채찍질을 아예 멈추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박민지는 “시즌 시작할 때는 분명히 ‘모 아니면 도’의 자세로 우승이 아니면 꼴찌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는데 컷 탈락(3라운드 진출 실패)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더라”고 털어놓았다. “한 번씩 컷 탈락을 하고 나면 충격이 크다. 자극이 된다”는 그는 “올해 컷 오프가 세 번인데 더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치고 있다. 한 번 미끄러지면 실패의 기억을 곱씹으면서 그다음 대회를 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자기 계발에 대한 강박은 버렸다. “나중에 지쳐버릴 것 같아 쉴 때는 말 그대로 쉬자는 주의”라는 설명이다. 박민지는 “저를 꾸미거나 맛있는 것 먹고 옷 사고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그런 좋아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 혼자 운전하고 가면서 노래 듣는 것도 즐긴다”고 소개했다. 식단 관리나 운동도 꾸준히 하지만 비시즌 때만큼 독하게는 아니다. 박민지는 “그렇게 너무 조이다 보면 언젠가 지쳐버려 골프를 더는 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연습도 열심히 하면서 하고 싶은 것은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으려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 수요일마다 장이 서는데 그곳에서 다코야키(잘게 썬 문어를 넣은 풀빵) 먹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한다. “정말 맛있어서 ‘언제 올까’ ‘언제 오지’ 한다니까요. 요즘에는 정말이지 수요일만 기다리는 것 같아요.”


양준호 기자 사진=권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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