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소통없이 35% 탄소감축 일방결정…"NDC 못 맞추면 韓 떠나야할 판"

[3각파고 규제에 숨죽인 기업] <중>기업 현실 무시한 ‘과속’ 탄소중립

수소환원제철 등 신기술 개발 멀고

제조업 비중 높아 대응에 어려움

산업경쟁력 고려 않은채 목표 높여

에너지소비 큰 철강·車·석화 타격

수출 감소 등 경제에 악영향 줄 수도

"기업 목소리 반영, 신중히 추진해야"





오는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지난 2018년 대비 35% 이상 줄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8월 말 국회를 통과하면서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나 자본 여력, 산업 경쟁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기존(26.3%)보다 목표치만 높였기 때문이다.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한 기업은 어쩔 수 없이 감산하거나 해외로 생산 기지를 이전할 수밖에 없어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0일 정부와 재계 등에 따르면 5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탄소중립기본법 통과에 따라 NDC 구체안을 논의 중이다. 정부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최종안을 발표하는데, NDC가 40%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는 2030년까지 최소 2억 4,000만 톤의 탄소를 줄여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포스코 연간 탄소 배출량(8,148만 톤)의 세 배에 달한다.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국민과 기업·정부는 물론 세계가 함께 동참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기업들은 2050년 탄소 중립이라는 무조건적인 종착점을 둔 채 2018년부터 선을 그어 도출한 ‘NDC 35% 이상’이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가 탄소 중립까지 30년을 앞둔 것과 달리 영국·프랑스가 60년(1990~2050년), 독일 55년(1990~2045년) 등 선진국은 훨씬 장기적 계획을 짰고 2019년 기준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28.4%로 유럽연합(16.4%)이나 미국(11.0%)을 월등히 웃돌아 탄소 중립이 더 어려운 여건이라는 점도 이 같은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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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쏟아내는 철강업만 보더라도 현실과 NDC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2019년 기준 국내 철강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억 1,700만 톤으로 국가 전체 배출량의 16.7%, 산업 부문의 30%를 차지한다. 문제는 국내 철강사들이 대부분 에너지 효율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놓아 현재 생산 수준을 유지할 경우 온실가스를 추가로 감축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지는 것이 수소환원제철 공법이다. 제조 공정에 쓰는 석탄을 수소로 대체하는 기술인데 상용화 목표 시점이 2040년, 소요 비용은 30조~40조 원에 달한다. 막대한 비용은 둘째 치고 이번 NDC 시점인 2030년에는 잘 해야 시험용 공장을 가동할 수준밖에 안 된다. 결국 철강 업계가 NDC를 지키려면 감산하거나 배출권 거래제와 NDC 연동을 전제로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타사의 배출권을 사들여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의 관건으로 꼽히는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요 선진국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대부분 기초연구 수준에 머물러 상용화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NDC를 두고 우리 기술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과속’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NDC가 수출과 일자리라는 한국 경제의 핵심 기반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자동차 수출 중 내연기관차 비중은 90%로 아시아와 중동·아프리카 등은 상당 기간 내연기관차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무리하게 전기차 생태계로 전환하면 상당한 국부 창출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석유산업도 비슷하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시장의 석유 수요는 감소할지 모르겠지만 국내 정유사의 수출 텃밭인 아시아(전체 석유 수출의 83.7% 차지) 수요는 계속 늘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자동차·석화 기업들이 동남아 등 신시장에서 수익성을 유지하려면 한국을 등질 수밖에 없다. 과속 탄소 중립이 중국의 배만 불려준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은 탄소 중립 달성 시기를 우리보다 10년 늦은 2060년으로 제시해 2030년까지는 지금보다 탄소를 더 배출하는 구조다.

탄소 중립에 무방비 상태인 중소기업도 과제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4월 진행한 동향 조사에서 중기의 56.1%는 “탄소 중립 준비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또 정부의 2050 탄소 중립안을 실현하려면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에만 787조~1,248조 원이 들어간다는 탄중위 검토내용이 알려지는 등 NDC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이어지고 있다. 박호정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은 “정부가 목표만 만들어 놓고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은 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당장은 2030년 감축 목표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정부가 기업의 목소리를 최대한 수용해 정책의 불확실성·모호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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