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뒷북경제] '해운 담합 봐주기법'의 세 가지 문제점

입법으로 제재 무마? 경쟁법 질서 무너져

관리감독 소홀히 한 해수부에 규제 권한

물류대란 속 수출기업·소비자 피해 우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지난달 28일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해운사들의 담합 과징금을 무마하는 해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5월 국내외 선사 23곳의 한국~동남아 노선 운임 담합행위에 과징금 8,000억 원을 부과한 데 따른 조치입니다. 현행 해운법도 선사 간 공동행위를 일부 허용하고 있긴 하지만 공정위는 선사들이 허용 범위를 넘어선 담합을 벌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동안 적자에 시달리다가 겨우 흑자 전환에 성공한 해운업계에서는 공정위의 과징금으로 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하지만 이렇게 입법으로 제재를 무마하려는 시도는 더 큰 법 질서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법 질서가 무너지면 피해를 보는 것은 대다수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①법 질서가 무너진다=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해운법 개정안은 해운사의 담합 등 공동행위에 공정거래법 대신 해운법을 적용하도록 했습니다. 소위의 법안 심사 과정에서 ‘공정위가 심사 중인 사건에까지 소급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법안에 포함됐습니다. 현재 논란이 된 해운 담합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선례를 남기면 같은 시도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담합으로 과징금 대상이 될 경우 다른 산업들도 국익을 내세우며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앞다퉈 국회를 찾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령 2010년 공정위가 21개 항공사의 항공화물 운임 담합에 1,19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에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9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특정 사건의 조사나 심결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의 법안이 국회에서 나오고 누적될 경우 경쟁법 질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이런 식의 법안이 통과될 경우 운송료 담합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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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에 하역이 지체된 컨테이너들이 최대 6단 높이로 쌓여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글로벌 해운 물류 대란으로 국내 최대 물류 항구인 부산항이 몸살을 앓고 있다./서종갑기자지난 23일 오후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에 하역이 지체된 컨테이너들이 최대 6단 높이로 쌓여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글로벌 해운 물류 대란으로 국내 최대 물류 항구인 부산항이 몸살을 앓고 있다./서종갑기자


②산업진흥법에서 공정거래 규제=산업을 진흥하는 목적의 해운법에서 공정거래를 규제한다는 점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번 담합 사건의 관리·감독 책임을 져야 할 해양수산부가 규제 권한을 가져가는 것도 의아한 지점입니다. 국회 농해수위도 이를 의식한 것인지 경쟁 당국인 공정위를 배제한 채 법안소위를 진행했습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농해수위는 법안 심사 소위에서) 공정위 관계자가 공식적으로 들어가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주지도 않았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심지어 소위 심사 과정에서 형식적으로나마 공정위의 개입을 허용하는 내용까지 모두 제외됐습니다. 애초 위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해수부 장관이 담합 신고 수리 여부를 공정위에 통보하고 △담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공정위가 해수부 장관에 통보해 필요한 조치를 필요할 수 있도록 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지만 이것이 모두 빠진 겁니다.

③중소 수출기업 피해=이런 조치로 담합이 횡행하게 되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결국 중소 수출기업과 소비자들입니다. 앞으로 해운사들이 악성 담합에 나서더라도 제재할 근거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은 물류대란 가운데 수출의 핵심인 미주 노선에서 해외 선사가 운임 담합에 나선다면 중소 수출기업이 입게 될 피해 규모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권은희·배진교·오기형·이용우·이정문 의원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문에서 “해운산업 재건은 중요하지만 해운사들의 이익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해운 운임은 화주사 이익이나 수출입 물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데 담합을 이렇게 무마하면 그동안 화주사나 소비자가 입은 피해는 그냥 묻고 넘어가자는 말 밖에 안 된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세종=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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