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로 경제활동이 급격히 위축됐던 지난해에는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확대되고 치료제 소식과 함께 경제활동도 재개되면서 이제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는 인플레이션이 임금이나 소득 상승 속도를 넘어서면 노동자나 가계가 소비할 수 있는 품목이 이전보다 줄어들게 된다. 실제로 소비할 수 있는 정도가 줄어드니 소득이 감소한 것과 같다. 경제학에서는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소득이 줄었다고 한다. 살림살이가 이전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둘째,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려는 중앙은행 조치의 부작용이다.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지난 1990년대부터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에 따라 인플레이션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정책을 운용해왔다. 미국의 물가안정목표는 2012년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가 도입했고 한국은 이보다 앞선 1998년 외환위기 직후에 시작했다. 대부분의 선진국 중앙은행은 물가안정목표를 2%로 설정하고 이보다 높을 경우 정책금리를 올려 소비나 투자를 제약하며 물가 압력을 낮추려 할 것이다. 게다가 정책금리 인상은 채권과 주식·외환 등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확대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최근의 인플레이션을 불편하게 보는 다섯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올해 경제 전망의 주요한 주제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이었다. 코로나19 위기로 낮아진 물가가 경기 개선과 더불어 점차 상승했다. 낮은 물가와 비교하니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는 기저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러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어서 다시 코로나19 위기 이전의 저물가 상황으로 돌아갈 것으로 봤다. 그러나 실제 인플레이션은 양상이 좀 달랐다. 8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8%로 13년 만에 최고였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러한 물가 상승세를 반영해 9월 경제 전망에서 2021년과 오는 2022년의 물가 상승률을 각각 3.8%와 2.1%에서 4.2%와 2.2%로 6월 전망보다 0.4%포인트, 0.1%포인트를 상향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당초 예상보다 높고 더 길게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둘째, 코로나19 이후 강조되는 탈탄소 정책에 따른 물가 압력이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구조적으로 장기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나라가 화석연료 기반 산업의 녹색산업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녹색산업 전환을 위한 투자 비용 증가와 화석연료 개발 억제에 따른 연료 부족, 연료 가격 상승 등이 물가 압력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전기료 급등과 중국 전력난의 원인이기도 하다.
셋째, 인플레이션이 수요와 공급 측에서 모두 발생해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수요 측으로 보면 많은 나라에서 2021년 중반에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됐으나 전반적인 경기회복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델타 변이의 여파로 하락세를 보였던 제조업과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여전히 기준치 100을 상회해 경제활동이 회복 국면에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실제 경제활동 수준이 경제의 평균 수준을 웃돌고 있어 경기 회복세가 지속된다면 그 격차, 즉 산출물 갭이 점차 확대되며 물가를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공급 측의 요인은 연료·원자재 가격 상승이 석유류 및 전력 비용 증가를 유발하면서 시차를 두고 석유 제품과 공업 제품, 서비스 부문으로 전이되며 물가 압력을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넷째,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높고 오래 지속된다면 통화정책 또한 이전의 예상과는 달리 전개될 것이다. 올해 들어 원자재 가격 급등 등의 여파로 물가 상승세가 빠르게 나타났던 브라질과 멕시코는 정책금리를 이미 다섯 차례나 인상했다. 미 연준도 9월 인플레이션이 당초 전망과 달리 다소 높은 수준이며 기간도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양적 완화를 축소하는 테이퍼링을 올해 안에 조기 실시할 것이며 정책금리 인상 시점도 2023년에서 2022년 하반기로 앞당겨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한국은행도 8월 경제 전망을 수정하면서 올해 인플레이션을 당초 전망보다 0.3%포인트 상향 조정하고 기준금리도 0.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처럼 코로나19 이후 정책금리 인상이나 양적 완화, 긴급 유동성 공급 축소 등 통화정책 정상화를 시작한 나라들로는 앞서 언급한 곳 외에 멕시코·노르웨이·유럽연합(EU)이 있다. 뉴질랜드도 이달 6일 정책금리를 올리며 이 대열에 참여했다.
다섯째는 이 같은 인플레이션 대책으로 중앙은행이 펼칠 유동성 축소와 정책금리 인상이라는 통화정책 정상화가 초래할 파장이다. 대다수 중앙은행들은 높아진 인플레이션 압력에도 경기 회복세 지속을 지원하기 위해 통화정책 정상화를 경제 상황에 맞게(data dependent) 운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장은 이런 약속보다 통화정책의 기조적 변화나 그 가능성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2013년 당시 미국의 양적 완화에 따른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우려로 시작된 긴축발작 (taper tantrum)은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 신흥시장국 통화 약세 등을 유발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확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이 늘어난 가계와 기업부채, 코로나19 위기로 급증한 정부부채는 같은 상황이 재연되면 또 다른 금융위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 특히 신흥시장국의 위기 가능성이 우려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21년 1분기 말까지 선진국과 신흥시장국의 가계·기업·정부 총부채는 각각 20조 9,000억 달러, 14조 5,000억 달러 증가했다. 그런데 경제 규모 대비 총부채 비중은 같은 기간 각각 44.0%포인트, 47.7%포인트 늘어났다. 총부채 증가 규모는 신흥시장국이 선진국보다 작지만 경제 규모를 고려한 부채 부담은 신흥시장국이 더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의 성장률 둔화와 생산자물가 급등세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중국 헝다그룹의 부도 가능성은 빠르게 증가했던 중국의 기업부채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기업부채 관리 방안으로 제시한 세 가지 레드라인은 부채 수준에 따라 추가 대출을 제한하는 것이어서 과도한 부채가 문제인 중국 부동산 개발 업자들의 유동성 부족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부동산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며 그 과정에서 중국 경제를 이끌어온 부동산 경기 위축과 부채 구조조정에 따른 금융 불안 확대가 예상된다. 특히 그 여파로 전반적인 경제활동이 위축될 경우 세계 경제의 공급망에 차질을 야기해 물가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전년 대비 9% 이상의 급등세를 보이는 중국 생산자물가가 수출 가격에 전가되면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승 요인이 될 것이다.
이 같은 인플레이션 전망은 중앙은행들이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통화정책을 정상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은도 코로나19 직전의 기준금리 수준인 1.75%까지 금리를 되돌리는 데 1%포인트의 인상이 필요하다. 미 연준은 2021년에 테이퍼링을 시작하고 정책금리를 2022년 하반기에 인상해 2.5%에서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보다 2%포인트 이상의 인상이 가능하다. 한은의 기준금리가 더 오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최근 발표한 금융 안정 상황 보고서에서 기준금리가 50bp, 즉 0.5%포인트 오르면 가계와 자영업자·기업의 이자 지급 부담이 각각 5조 8,000억 원, 2조 9,000억 원, 4조 3,000억 원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만약 기준금리가 100bp 상승하면 총이자 지급 부담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3%인 26조 원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으로 저하된 정책 여력을 감안하면 금리 상승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가계와 기업은 너무 늦기 전에 채무 상환 능력을 제고하고 정부와 중앙은행은 금융 불균형 해소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선제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