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영치금부터 비트코인까지…체납세금, 끝까지 추적해 받아낸다"

[이사람]고액 체납자 잡는 '현대판 암행어사' 이병욱 서울시 38세금징수과장

2001년 38세금징수과 창설멤버로 합류

압류 동산 경매처분 등 징수기법 선도

20년간 추징 세금 3조6,000억 달해

신용불량 등록 해제·채무 조정 등

생계 어려운 체납자엔 재기 지원도

이병욱 서울시 38세금징수과장./오승현 기자이병욱 서울시 38세금징수과장./오승현 기자




“암행어사 출두요.”



조선시대에 마패를 손에 든 암행어사가 힘차게 외치며 등장하면 탐관오리들이 벌벌 떨었다. 600년이 훌쩍 지난 2021년에도 암행어사의 ‘필수템’인 마패를 앞세워 부정을 잡아내는 ‘현대판 암행어사’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납세의 의무’를 저버린 고액 체납자들을 집중 감시하는 이병욱 서울시 38세금징수과 과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이끄는 38세금징수과가 지난 20년간 추징한 체납 세금만 3조 6,000억 원, 연간 1,800억 원에 달한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초 이 과장을 포함한 같은 과 공무원들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마패와 유척(놋쇠로 만든 자)을 수여받았다.

“독한 체납자 잡아라” 특명받은 원년 멤버의 귀환

“급여 명세서를 보면 꽤 많은 부분이 세금으로 빠져나가는 게 보이니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래도 대다수의 국민은 ‘세금은 당연히 내야지’라고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혜택들은 다 누리고 싶어하면서 세금을 내는 것은 아깝다고 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체납된 세금을 징수하는 조직이 바로 저희 38세금징수과죠.”

서울시 체납 세금 전담조직 38세금징수과를 이끄는 이 과장은 이들 체납자를 ‘비양심 고액 체납자’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38세금징수과의 관리 대상은 ‘1,000만 원 이상’ 체납한 사람들이다. 보통 세금 징수는 각 자치구의 몫이지만 1,000만 원이 넘는 세금을 1년이 넘도록 내지 않으면 서울시 38세금징수과가 징수를 맡게 된다. 끈질기게 세금을 안 내는 그야말로 ‘독하디 독한’ 체납자를 전담하는 조직인 셈이다.

이처럼 독한 체납자를 상대하는 이 과장은 그야말로 베테랑 세무 공무원이다. 1993년 12월 종로구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서울시 지방세무직 1기로 들어왔다. 이 과장은 “종로구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2000년에 서울시청으로 들어왔는데, 그게 딱 38세금징수과가 창설되기 1년 전”이라며 “2001년 38세금징수과가 처음 만들어질 때 저도 함께했다”고 말했다. 이후 10년을 38세금징수과에서 일하다 행정국과 민생사법경찰단 등 다른 부서를 두루 거치고 올해 1월, 다시 38세금징수과의 과장으로 복귀했다. 이 과장은 “10년간 다른 부서와 ‘외도’를 하고 38세금징수과가 20년을 맞은 올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딱 20번째 38세금징수과장이 됐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대여금고·영치금에 암호화폐까지…발전하는 新징수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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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서울시장 시절인 2001년 창설된 38세금징수과는 전국 최초의 체납 세금 전담 조직이다. ‘최초’였던 만큼 시행착오도 많았다. 징수 방법 등에 대한 노하우가 전무하다 보니 38세금징수과가 직접 부딪혀가며 쌓아간 경험들은 곧 세금 징수의 매뉴얼이 됐다. ‘체납 세금 징수’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택수색도 38세금징수과가 처음으로 도입한 방법이다. 이외에도 인터넷 도메인, 법원 공탁금, 은행 대여금고, 정원 수목 및 수석, 그리고 영치금 압류도 38세금징수과가 원조다. 이 과장은 “본인 명의로는 아무것도 없는 채로 교도소에 있고, 부인이나 자식은 강남에서 잘살고 있는 경우도 있다”며 “그런 식으로 세금 징수를 피하는 수감자의 영치금을 찾아내 압류한 것도 우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압류한 동산을 경매로 처분하는 것도 38세금징수과에서 전국 최초로 시도했다는 것이 이 과장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압류한 물건들을 처분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래서 압류하는 족족 사무실에 쌓아놓았는데 몇 년을 그리 하다 보니 사무실이 빽빽이 들어차고 ‘매각해서 체납액 좀 줄여달라’는 체납자들도 줄을 이었다”며 “인사동 고미술 경매장, 경기도 광주 사설 경매장도 찾아가고 법원 집행관도 직접 찾아가서 비법을 전수받아와 경매를 했다”고 말했다. 그리해 2007년 서울시청 강당에서 첫 경매가 진행됐다. 이 과장은 “작은 물건들은 강당에서, 큰 물건들은 체납자 집에서 경매를 했다”며 “신문에 광고도 열심히 했고 골프채·수석 등 돈이 되는 물건들이 나오다보니 인파가 엄청 몰렸다”고 회상했다.

날이 갈수록 체납 수법이 교묘해지는 만큼 징수 기법도 발 빠르게 발전해야 한다고 이 과장은 강조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체납자들도 머리를 더 많이 굴려서 그런지 수법이 교묘해진다”며 “그런 수법을 한 번 놓치면 입소문을 타고 확산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만큼 저희가 더 열심히 뛰어서 이를 철저히 징수해 성실 납세 풍토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38세금징수과는 암호화폐를 압류해 화제가 됐다. 고액 체납자 중 676명의 암호화폐 251억 원어치를 압류하자마자 이 중 118명이 체납 세금 12억 6,000만 원을 즉시 납부했다고 한다. 이 과장은 “아무래도 서울시 38세금징수과가 징수 기법을 선도하는 입장이다 보니 수시로 새로운 징수 기법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며 “이번에 암호화폐를 압류했을 때에도 검찰 등 다른 기관에서 ‘어떻게 한거냐’라고 묻는 문의가 쇄도했다”고 말했다.

생계형 체납자에게는 재기 위한 발판 마련도

체납자의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체납된 세금을 받아내는 일 외에도 올바른 납세 풍토를 지켜 조세 정의를 구현하는 것도 38세금징수과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이 과장은 말했다. 그가 징수 업무와 별개로 대외 홍보에 힘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과장은 “예전보다는 인원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38세금징수과가 제한된 인력으로 2만 6,000명에 달하는 체납자를 담당하기 쉽지 않다. 체납자를 1 대 1로 상대하며 징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희가 하는 일이 기사나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 그만큼 체납 세금을 징수하는 일이 수월해진다”며 “언론을 통해 저희가 하는 일을 접한 체납자들이 ‘정말 우리 집에 찾아오느냐. 그 전에 세금을 내겠다’고 전화오는 경우도 많다. ‘체납을 하면 끝까지 추적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 성실 납세 풍토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모든 고액 체납자가 악의적인 체납자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사업 실패 등 피치 못한 사정으로 세금을 못내는 체납자를 지원해 다시 성실한 납세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도 38세금징수과의 업무라는 것이 이 과장의 설명이다.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당시에는 신용회복위원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자활 의지가 있는 체납자의 신용 불량 등록을 해제하고 채무 조정을 해주는 등 재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징수를 위해 현장에 나가다 보면 정말 힘들어서 세금을 못내는 생계형 체납자들도 많다”며 “그분들에게는 복지제도를 연계해주는 등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저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 He is...

△1964년 △2015년 서울시립대 서울행정관리 석사 △2016년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 민생수사총괄팀장 △2021년~ 서울시 재무국 38세금징수과장

양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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