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에 각국 정부는 백신 접종을 의무에 준하는 수준으로 권장하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는 마스크를 벗은 채 ‘차라리 코로나로 죽겠다’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가가 사생활에 개입하지 말고 방역조치를 개인의 자율에 맡기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독일의 대표적 대중 철학자인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신간 ‘의무란 무엇인가’에서 이 같은 저항을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며 코로나 시대 국가의 역할을 고찰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의무’라는 화두와 이를 거부하려는 ‘탈의무’ 현상이다. 탈의무를 외치는 이들은 코로나19 시국에 국가의 행위가 부당하게 자식을 괴롭히는 권위적 부모의 모습과 같다고 본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타인을 통해 겪고 싶지 않은 일은 타인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은 전염병에도 그대로 해당된다”고 일갈한다. 또한 “거리두기 규칙과 얼굴에 작은 천 조각 하나 걸치는 것조차 그렇게 분노한다면 전지구적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시민들에게 훨씬 더 강력한 제한과 행동 변화를 요구할 때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고 되묻는다.
프레히트에 따르면 국가는 시민혁명을 거쳐 통치 목표를 ‘시민의 행복’으로 수정함에 따라 시민을 돌보고 어려움에 대비하는 존재가 됐다. 또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상품을 소비하는 경제 주체로서의 국민을 관리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체계적으로 국민의 몸, 건강, 수명, 인구를 관리하는 ‘생체 정치’가 나타나게 됐다. 코로나19 국면의 국가 방역조치도 생체 정치의 개념으로 설명된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모든 구성원이 자유를 극대화하고 의무는 최소화하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들이 경제적 이익에 매몰될수록 시민의 정치의식은 희미해지고 사회는 병들기 때문이다. 소비자로 변한 시민들은 공동체 의식보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내가 기획한 대로 국가가 해주지 않으면 국가와의 내면적 계약을 파기하고, 공동선의 의무를 내팽개쳐도 된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의무를 국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치르는 비용 정도로 여기는 관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의무는 고대와 중세에서 돌봄과 보호, 공동체에 대한 참가와 봉사를 뜻했으며 그 자체로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었다. 니체는 ‘의무란 우리에 대한 타인의 권리’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저자는 다시 시민의 공동체의식을 끌어올릴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일정 기간 공동체를 위해 주 15시간 내외의 봉사 의무를 부여하는 ‘사회적 의무복무’ 도입을 제안한다. 코로나 불안이 해소된 이후에는 “정치인들 스스로 팬데믹 때 행사했던 막강한 권력을 원점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며 지금의 국가적 개입은 절대적 예외 상황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점도 짚는다. 1만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