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노동조합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 자동차 부품회사의 하청업체 노동자로 구성된 노조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흐름을 타고 2018년 결성됐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B노조 지회가 등장하면서 ‘고난의 길’을 걷는다. 한 사업장 내 양대노총 소속 노조의 경쟁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A노조가 소속된 노총은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사측도 A노조를 지원해왔다. 그러나 이 지원이 예상 못한 상황을 낳았다. A노조가 조합원을 늘리고 교섭대표노조 지위까지 얻은 상황에 대해 사내에서 '어용노조' 프레임이 형성된 것이다.
사측과 손을 잡은 게 결과적으로 A노조의 오판이었다. 당시 강성이었던 B노조가 파업을 했고, 결국 사측이 물러섰다. B노조가 얻어낸 임금 인상폭은 그동안 A노조가 얻어낸 인상폭을 웃돌았다. 당연히 A노조에서 노조원 이탈이 시작됐고 다수 노조 지위는 B노조가 거머쥐었다.
하지만 지난해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소수노조가 된 B노조가 조합원만 중시하는 활동을 편 결과 어용노조 프레임을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게다가 B노조는 조합원 임금을 예전처럼 못 올렸고 간부진에게 특혜가 돌아간다는 의혹까지 받게 되면서 입지가 흔들렸다.
14일 한국노총이 연 복수노조 토론회에서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공개한 현장 사례다.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복수노조 허용이 역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경쟁을 심화시켜 한 사업장 내 노노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이다. 이는 최근 여러 사업장마다 문제가 된 파업의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노총이 산하 596개 노조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복수노조 사업장은 40.1%에 달했다. 추가로 236개 노조에 복수노조 도입 이후 변화에 대해 묻자 28.5%는 다수노조에서 소수노조로 또는 그 반대로 방향으로 지위가 변했다.
복수노조 문제점(462개 노조)에 물은 결과 27.3%는 노조 분할로 인한 교섭력 약화를, 26.8%는 노조간 경쟁 심화를, 12.1%는 사용자 지배개입 확대를 꼽았다.
노동계에서는 이 상황이 제도가 빚은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행 노조법은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교섭창구단일화를 통해 1사1교섭 원칙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노노 갈등이 일어나고 단체교섭권을 얻지 못한 소수노조의 반발이 불가피하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앞서 B노조가 파업을 통해 다수노조 지위를 확보하는 식이다. 교섭창구 단일화의 또 다른 문제는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만 적용돼 산별 노조를 약화한다는 것이다. 우리 노동시장도 노동선진국인 북유럽처럼 산별 노조로 가야한다는 목소리는 많지만, 제도가 이 바람을 못 따라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