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도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 군사 쿠데타 공모자에서 최초의 민선 대통령이 됐던 논쟁적인 인물이 별세했다”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26일(현지 시간) 블룸버그는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처음으로 직선제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8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이력을 집중 조명했다. 재임 기간인 1988년부터 1993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를 두 배로 높이고 북한과 동시에 국제연합(UN)에 가입하는 등 경제적·외교적 성과를 이룬 인물이면서 동시에 부정부패로 퇴임 후 유죄 판결을 받아 평가가 얼룩진 인물이라고 평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북방 정책(Nordpolitik)을 언급하며 “소련의 해체 전에 공산권 국가와 적극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1991년 남북 화해와 불가침을 선언한 남북 기본합의서 발표 성과를 이뤄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오른팔인 만큼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대규모 학살에 연루된 이미지를 지우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로이터는 “권위주의 정부에서 직선제로 가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 했으나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라며 “군사 쿠데타 공모자에서 최초의 민선 대통령이 됐지만 부패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불명예로 정치 경력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일본 NHK는 마지막 군인 출신의 대통령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끈 노태우 전 대통령이 향년 89세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한일 양국의 미래 지향적 관계를 주장했던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90년 5월 방일 당시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국회에서 연설을 했으며, 아키히토 일왕을 만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89년 일본 방문을 준비하면서 방일 이후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이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한 수교를 이뤘고 1992년 9월 중국을 국빈 방문한 적이 있다”며 “이른바 ‘북방외교’를 통해 구소련, 동유럽 국가들과도 수교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신문망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선조가 중국 산둥성 출신이라고 밝혔다”면서 “대통령직 퇴임 후인 지난 2000년 6월 산둥성 창칭을 방문했었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