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 때 시작된 철강 ‘관세 분쟁’을 끝낸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번에는 공동으로 중국산 철강 견제에 나선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동맹을 겨눴던 관세 ‘창끝’을 돌려 중국을 겨냥한 모양새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도 ‘관세 동맹’ 참여를 요구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미국과 EU는 10월 31일(현지 시간) 공동성명을 내고 양측이 탄소 집약도와 글로벌 철강 공급 과잉에 대응할 글로벌 합의를 위해 협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지난 2018년부터 EU산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각각 25%, 10%의 고율 관세를 매겨오던 조치를 전날 전면 철회하자마자 곧바로 양측이 관세 연대 구축을 선언한 것이다. 성명은 “첫 조치로 미국과 EU는 교역용 철강·알루미늄에 수반되는 (탄소) 배출을 평가하기 위한 공동의 방법론을 개발하고 관련 자료를 공유하기 위한 기술적 워킹 그룹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EU가 ‘탄소 배출량을 따지겠다’고 한 것은 중국산 철강을 직접 겨냥하겠다는 의미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폐막한 이날 미국과 EU 간 관세 분쟁 종식을 큰 성과라고 자찬하며 “중국 같은 나라의 ‘더러운 철강’이 우리 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중국산 철강이 탄소 배출이 많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2019년 중국 철강 업계의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은 약 173만 톤으로 이는 같은 해 중국 전체 배출량의 15%나 차지한다. 즉 탄소 중립을 명분으로 중국산 철강을 미국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미국과 유럽의 철강·알루미늄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보다 ‘더 깨끗하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양측이 다른 나라의 참여를 환영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성명은 “글로벌 합의가 무역 정책을 동원해 기후변화 위협 및 글로벌 시장 왜곡에 맞서려는 공동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관심 있는 어떤 국가에도 참여할 기회가 열려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무역 담당 집행위원은 “생각이 같은 나라들에 이 합의에 참여하라고 초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인도와 일본·호주와 구축한 안보협의체 ‘쿼드’와 비슷하게 EU를 포함한 동맹국들을 끌어모아 반(反)중국 관세 동맹을 맺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렇게 되면 미국 철강 수입 4위국인 한국 입장에서는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미국이 관세 동맹국이냐 아니냐를 따져 특혜 또는 불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은 미국과 EU가 관세 분쟁을 마무리하면서 그간 반사 이익을 봐온 한국 철강 업계가 수출 물량이 줄어드는 등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