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연구원 만들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 진행이 이따구야”
“비서: 야 니가 사장이라고 이제 나한테 막한다. 다 때가 있는거야”
“사장: 그동안 신세진 사람이 좀 많아? 어린이집, 복지관 등 자리 좀 만들어 달라고 난리다”
“비서: 우리가 언제 이런 호사를 경험하냐 ㅋㅋ. 판공비로 놀아도 누구도 뭐라 못해”
“사장: 이번 용역은 누구 줄거야. 재정진단은 회충이가 했으니 이번에는 생충이로”
서울의 한 구청 주민센터에서 일하던 A씨는 지난 2019년 8월 노조 게시판에 ‘기생충(논픽션? 픽션?)’이란 제목의 소설을 올렸다. 구청장과 정책보좌관 B씨를 각각 사장과 비서에 빗대 구청 내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구청장은 A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A씨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재판에서 “연구원 설립과 재정진단 용역, 관내 주요시설장 임명은 통상적으로 진행됐고, 판공비도 법에 규정한 용도대로 쓰였다”며 “그럼에도 A씨는 비방할 목적으로 거짓의 사실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제2형사부(박노수 부장판사) 지난 10월 22일 열린 A씨의 항소심 재판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실제로 당선 전부터 해당 연구원 설립에 적극적었던 구청장이 당선 이후 내정 소문이 돌던 재정진단 용업업체를 높은 점수로 선정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지인들을 구청 요직에 임용해 논란이 일었으며, 업무추진비 역시 규정된 한도를 초과해 담당 부서로부터 지적받은 사실이 있었다.
이에 재판부는 연구원 관련 내용에 대해 A씨가 글 서두와 마지막에 적은 “연구원 관련 용역과 제한입찰(논픽션)을 기반으로 ‘이랬을 수도 있다(픽션)’고 상상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쓰다쓰다 이제 소설도 써봅니다. 제발 이런 상황은 아니었기를…”는 문장을 토대로 “의문을 가지고 작성했기에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고 업무추진비를 남용한다는 취지의 내용에 대해서도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전문임기제 공무원으로 임용하고, 규정을 위반해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사실이 있어 ‘거짓’의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사생활이 아니라 국가기관으로서 공적 업무 수행에 관한 것이고, 노조원만 열람할 수 있는 비공개 밴드에 약 16시간만 게시해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공공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의사를 부정하고 비방할 목적만 판단하는 것은 공무에 대한 감시·비판을 지나치게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