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계가 요소수 품귀 사태에 비상이 걸렸다. 이달 말이면 요소 재고량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돼 물류 대란에 대한 우려가 특히 심하다. 요소수가 필수적인 화물 트럭의 운행이 멈추는 날에는 ‘경제 동맥경화’를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7일 업계와 정부 등에 따르면 요소수 원료인 요소는 현재 이달 말까지 쓸 분량만 남아 있다.
추가 요소가 확보되지 않을 경우 이르면 이달 말부터 요소수 공급이 전면 끊길 것으로 전망된다. 올 1~9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요소 수입량의 97.66%를 담당하는 중국이 수출 금지 조치를 풀지 않으면 요소수 공급 중단으로 인한 물류 대란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국내 요소수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롯데정밀화학(004000)의 한 관계자는 “추가로 재고 확보가 되지 않을 경우 이달 말이 지나면 공장을 닫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요소수 공급이 끊기면 디젤 화물 트럭의 운행 중단으로 이어진다. 전체 디젤 화물 트럭 약 330만 대 중 200만 대에 요소수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 마비가 불가피한 셈이다.
철강 업계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무게가 10~20톤에 육박하는 철강 제품을 운송하려면 디젤 화물 트럭이 필수다. 한 철강 업계 관계자는 “한 달가량 쓸 수 있는 요소수 물량이 있지만 추가 공급이 끊기면 운송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운송 업체와 예약 물량을 한꺼번에 운송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요소수 재고 2개월 치를 확보하고 있다. 디젤차 출고 시 차에 주입할 용도의 요소수다. 추가 확보가 안 될 경우 내년 초부터 출고 차질이 불가피하다. 특히 우려하는 상황은 탁송 트럭의 요소수 부족이다. 요소수 부족으로 탁송 트럭 운행이 중단되면 완성차를 생산해서 소비자에게 인도할 수 없다. 수출 차량을 항구로 운송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반도체 부족으로 차량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완성차 업계에 요소수 품귀발 수출 차질이라는 새로운 악재가 추가되는 것이다. 서비스 센터도 요소수·충전 판매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다. 현대차 공식 협력 서비스 센터인 블루핸즈와 직영 서비스 센터는 현대모비스(012330)에서 요소수를 공급받는다. 현재는 공급이 거의 끊겼고 재고도 바닥난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기계 업계도 비상이다. 건설기계 대부분은 디젤 엔진으로 요소수 없이는 작동되지 않는다. 건설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14톤급 휠 굴착기는 4~5일마다 요소수 10ℓ 1통이 필요하다. 이번 요소수 품귀 현상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건설기계 업계는 디젤 엔진을 수소연료전지와 전기 모터로 대체하는 친환경 건설기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료 업계는 공장 가동을 멈춘 곳이 속출하고 있다. 국내 비료 원료의 재고가 바닥나서다. 한국비료협회 관계자는 “회원사 7곳 가운데 1~2곳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은 이미 비료 생산을 멈춘 상태”라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내년에 농가에 비료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소수 품귀에 시멘트·레미콘사도 비상이다. 시멘트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비축된 요소수로는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다음 달이 고비”라며 “이른 시일 내에 요소수를 추가로 확보하지 못하면 각 시멘트 생산 업체의 소성로는 가동이 중단될 수밖에 없고 건설 현장도 마비될 수 있다”고 전했다. 레미콘사의 경우 요소수 부족으로 인한 레미콘 차량 운행 차질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찬수 한국시멘트협회 홍보협력팀장은 “요소수 대란이 지속되면 시멘트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차량은 부득이하게 운행을 중단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등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택배·유통 업계도 요소수 품귀 현상이 배송 대란으로 번지지 않을지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자영업자 게시판에는 “택배 대리점에서 요소수 때문에 앞으로 배송이 지연될 수 있다는 문자가 왔다”며 “원부자재를 미리 주문해놓고 있다”는 글이 올라온다. 가전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생활 가전 배송 차량 중 대부분이 디젤 화물 트럭이다. 4분기는 가전 업계가 매출을 끌어올리는 성수기로 화물 트럭이 멈출 경우 수익성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뿐만 아니다. 마그네슘·실리콘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수입 품목 가격도 기존 대비 3~4배가량 오르면서 ‘제2의 요소수 대란’ 우려가 나온다. 중국은 전력난과 탄소 배출 규제로 마그네슘 생산을 줄였다. 그 결과 올 7월 중순 톤당 1만 9,000위안에서 9월 7만 위안으로 세 배 넘게 가격이 뛰었다. 마그네슘은 자동차·스마트폰·배터리 등 소재로 쓰이는데 수입에 차질을 빚을 경우 국내 완성차·전자 업계가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건설 현장과 생활용품에 쓰이는 실리콘도 마찬가지다. 실리콘 원료인 메탈실리콘의 가격은 8월 초 1만 7,000위안에서 지난달 6만 1,000위안까지 네 배 넘게 올랐다. /서종갑·이혜진·김정욱·박호현 기자 ga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