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韓美, 중국發 공급난 맞서 "반도체 공조"…철강쿼터 확대 논의도

■한미상무장관회의

韓 "반도체 정보제공 1회성 그쳐야"

美 "불가피했다" 추가조치 언급안해

한국산 철강쿼터 개선 논의 지속도

美, 글로벌 공급망 재편 압박 속

韓 '안미경중' 줄타기 시험대에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상무부 회의실에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상무부 회의실에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통상 당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은 제품들이 특정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한미 간 공조 필요성이 한층 강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단 미국 정부에 국내 반도체 기업의 영업 기밀 보호 및 대미 철강 수출 확대 등을 요청했다. 미국 측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자료 제출을 ‘이례적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철강 수출에 대해서도 개선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방미와 한미상무장관회의를 계기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영업 기밀 자료 제출과 관련해 급한 불은 끈 셈이다. 다만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작업을 통해 중국 포위망을 더욱 촘촘히 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 편에 줄을 서라’는 미중 양국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 장관은 9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후 “(러먼도 장관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자료 제공에 대해 사의를 표명했고 이번 상황은 공급망 내 미스매치가 일어난 이례적 상황에 불가피하게 이뤄진 조치였다는 언급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날 문 장관은 러몬도 장관을 만나 우리 반도체 기업의 정보 제공을 비롯한 공급망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문 장관은 이 자리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정보 제공 요청이 1회성으로 그쳐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미국 상무부 협조로 우리 기업의 우려가 해소되고 원만히 자료 제출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러몬도 장관은 이와 관련해 반도체 정보 제공 요청은 공급망 위기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내 우려를 잘 알고 있고 한국 기업의 협조에 감사한다”면서 “제출한 영업 비밀을 엄격히 관리해 나가겠고 이번 자료 제출 요청은 이례적인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상무부는 앞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지난 8일(현지 시간)까지 고객사 정보와 반도체 재고량 등 26가지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전날 고객사 등 민감 정보를 제외한 자료를 미국 측에 제출했다. 문 장관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정보 추가 요청 여부와 관련해서는 “추가 조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우리 반도체 기업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날 SK하이닉스가 제출한 반도체 공급망 관련 자료를 연방정부 사이트에 공개했다. SK하이닉스는 입장 자료에서 자사가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은 현재 글로벌 반도체 칩 부족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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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그동안 국장급에서 진행돼온 ‘한미 산업협력대화’를 장관급으로 격상한다. 아울러 국장급 대화 채널인 ‘한미 반도체 파트너십 대화 1차 회의’ 개최에도 합의했다. 양국 정부와 기업·전문가가 참여해 다음 달 8일 첫 회의를 연다.

한국산 철강 쿼터 확대에 대한 논의도 진행했다. 문 장관은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철강 232조 조치 협상이 타결된 만큼 트럼프 정부에서 합의한 한국산 철강 232조 조치에 대한 쿼터 확대 및 운영 신축성 등 개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러몬도 장관은 “한국 내 관심을 알고 있고 양국 간 파트너십에 기반해 향후에도 지속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2018년 미국과 무역확장법 232조 협상 당시 25% 관세 부과를 면제받는 조건으로 철강 수출을 직전 3년 평균 물량의 70%로 제한하기로 했다. 다만 미국은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유럽연합(EU)산 철강에 부과하던 25% 관세를 철폐하기로 하며 한국 철강의 미국 내 점유율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작업이 이어질 예정인 만큼 미중 양국의 압박이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전망했다. 안보와 통상을 연계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가운데 현 정부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줄타기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중립을 가장 강력하게 표방하는 나라 중 하나”라며 “대부분의 나라가 미국에 붙어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중국에 치우쳐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요소수’ 뒷북 대응에서 보이듯 정부가 공급망과 물자 확보 등 통상 이슈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정부의 관심이 종전 선언이나 북한 제재 완화 등에 쏠려 있는 만큼 산업부 장관의 방미로 성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종=우영탁 기자·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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