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이후 위중증 환자 규모가 연일 역대 최다를 경신하며 수도권의 병상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정부는 ‘비상계획(서킷 브레이커)’을 검토할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부터 비상계획 기준을 구체적으로 확정하고 논의에 들어가지 않으면 의료 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11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위중증 환자는 473명으로 전날보다 13명 늘며 다시 역대 최다 규모를 기록했다. 병상 가동률은 날이 갈수록 정부가 비상계획 기준으로 제시했던 75%에 근접하고 있다. 전날 오후 5시 기준 전국의 코로나19 중환자 전담치료 병상 가동률은 58.3%지만 수도권은 72.9%로 서울 74.8%, 인천 72.2%, 경기 70.7% 등 모두 70%를 넘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비상계획을 논의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백브리핑에서 “비상계획 도입이나 검토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현재로서는 논의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이번 주나 다음 주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상 회복 단계에서는 확진자, 위중증 환자 증가가 불가피하다”면서 “우리 의료 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위중증 환자 수준은 500명보다 더 많은 만큼 일상 회복을 지속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집중되고 있는 수도권 일부 지역에 한정해 비상계획을 발동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비상계획을 부분적으로 실행할 생각은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의료 체계 붕괴를 막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금부터라도 의료 체계를 점검하고 비상계획의 기준과 도입 방향 등을 논의해야 한다”며 “수도권에 우리나라 모든 역량이 집중됐기 때문에 수도권이 망가지면 전국이 망가진다”고 지적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이번 주에 수도권부터 비상계획을 먼저 발동해야 한다”며 “중증 환자는 치료에 한두 달이 걸리기 때문에 계속 축적될 수밖에 없어 수도권은 이번 주말에 포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비상계획 발동 기준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전문가 논의와 종합적 상황 검토를 거친 뒤 비상계획 관련 세부 지표를 오는 16일 발표할 방침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비상계획 기준,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한 내용이 아직 예시 수준”이라며 “병상만 확보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중증 환자를 위한 인프라, 숙련된 의료진이 필요한데 향후 사태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정은경 질병청장은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방역 조치가 강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 청장은 “상황이 나빠지면 1단계를 지속하거나 조치를 강화할 수 있다”며 “위중증 환자가 증가하고 있어서 예의주시하고 있고 진행 상황을 보면서 단계 전환이나 조치에 대한 부분들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에 따르면 국내에서 추가 접종(부스터샷)을 한 뒤 사망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신고한 사례가 처음으로 보고됐다. 80세 이상의 여성이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사례다. 정부는 이 같은 이상 반응의 인과성 평가를 위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백신 안전성위원회를 12일 발족한다. 박병주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부원장이 위원장을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