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美 '대중포위망' 강화 속 中은 점차 고립…韓 '양자택일 시간' 왔다 [재편되는 글로벌 공급망]

<중>신통상전략은 선택적 다자주의

美, 쿼드 · 오커스 · EU 철강 관세 철폐 등 우군 강화

中 'WTO 옹호' 하지만 해외기업 역차별에 명분 잃어

"韓, 안미경중 버리고 美 주도 무역질서 흐름 따라야"

정대진(왼쪽 두번째)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와 대니얼 크리튼브링크(오른쪽 세번째)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한미 공급망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사진 제공=산업통상자원부정대진(왼쪽 두번째)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와 대니얼 크리튼브링크(오른쪽 세번째)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한미 공급망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사진 제공=산업통상자원부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일주일 새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보냈다. 지난 9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 장관을 만나 한국 반도체 기업의 영업 기밀 보호 및 대미 철강 수출 확대를 요청했다. 다음날인 10일(현지 시간)에는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 및 미국경제단체 BRT의 조슈아 볼턴 회장과 만나 한미 경제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문 장관은 12일 오후 귀국 뒤 ‘유전자 증폭(PCR)’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자가격리하다 14일 바로 출근해 산업부 직원들과 공급망 안정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15일에는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을 방문해 요소 수급 현황 등을 살펴봤으며 이번 주 내내 공급망 관련 일정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문 장관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한국 통상 환경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미국은 앞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고객사 정보 및 반도체 재고량 등 26가지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며 ‘미국 우방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의지를 확실히 드러냈다.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유럽연합(EU)산 철강에 부과하던 25% 관세를 철폐하기로 하며 ‘우리 편에 줄을 서라’는 확실한 신호를 줬다.

반면 중국은 미국이 구축 중인 대(對)중국 포위망 와해를 위해 자국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 중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정밀 타격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이 차량용 요소수 생산의 필수 품목인 요소의 97%를 자국산으로 조달하고 있다는 점을 노려 지난달 갑작스레 요소 수출을 제한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경유 화물차 운행 중단 등 ‘물류대란설’이 확산됐으며 정부는 연일 대책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예전에는 경제적 이해만 가지고 공급망 구축 여부를 결정했지만 이제는 안보나 기술 전략 등 복잡한 변수들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며 시대가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견지해왔던 ‘줄타기 외교’의 시효가 끝났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15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은 시간이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일방주의’로 치달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다자 외교를 기반으로 중국의 숨통을 죄고 있다. 미국·일본·인도·호주의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는 올 3월 사상 첫 정상회의를 개최해 희토류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한편 희토류 공급망을 다양화하기로 했다. 미국은 또 올 9월 영국·호주와 함께 중국 견제용 안보 협정인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며 중국 포위망을 한층 강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는 “공급망 문제는 어느 나라의 일방적인 조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동맹국 간 조율이 핵심”이라며 다시 한 번 중국을 겨냥한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EU산 철강에 부과하던 관세 철폐와 관련해 “중국과 같은 나라의 ‘더러운(dirty) 철강’의 우리 시장 접근을 제한할 것”이라는 같은 강도 높은 표현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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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이 같은 미국의 포위망을 벗어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무역 질서를 강조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2일 영상으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고, 대항 대신 대화하고 배척 대신 포용하며, 관계 단절 대신 융합을 해서 세계무역기구(WTO)를 핵심으로 하는 다자무역 체제를 견고히 수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올 9월에는 미국이 빠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을 공식화하며 신규 경제 블록 합류를 통한 출구 찾기에도 나서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전략이 계속 유효타를 날리고 있는 것과 달리 중국의 이 같은 전략에는 각국이 호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자국 기업 육성을 위한 무차별 보조금 지급 및 해외 기업의 자국 내 투자 제한 등으로 WTO 체제를 무력화시킬 사실상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WTO 체제 옹호 명분이 없다. CPTPP 또한 노동 규약 등을 감안하면 신장 위구르 문제 등으로 인권 탄압 논란이 있는 중국의 가입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CPTPP 가입국인 멕시코와 캐나다가 미국 중심의 북미 3개국 간 자유무역협정인 ‘USMCA’ 가입국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눈치 때문에라도 중국의 가입을 불허할 가능성이 높다. CPTPP에 신규 가입하려면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압박이 갈수록 거세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택1’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차이나 리스크’를 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사실상 ‘신(新)냉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전략적 모호성만 유지하려 한다”며 “한국 입장에서는 통상 외에도 국가 안보와 민주주의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미국 편에 서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밝혔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반도체 등과 연계된 기술 특허와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무역 질서 등을 감안하면 자연스럽게 미국 쪽에 서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양철민 기자·세종=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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