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학생 수 줄어 교부금 넘치지만 '모르쇠'…20년째 세계 최고 상속세율도 손 안대

■度 넘은 세금정치…정작 바꿔야 할 세제는 입 다문 대선후보들

근로자 중 면세자 37% 달하지만

'비과세 감면 연장' 매년 되풀이

핀셋증세 집중…조세 경쟁력 발목

홍남기(왼쪽 두 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참석자들이 15일 오후 대전 항공우주연구원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1회 국가우주위원회에서 김 총리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홍남기(왼쪽 두 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참석자들이 15일 오후 대전 항공우주연구원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1회 국가우주위원회에서 김 총리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최근 기자재 교체 결재를 올렸다가 반려됐다. 중간 수준의 비용으로 냈는데 가장 비싼 물건으로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아서다. 다른 학교에서는 코로나19 관련 출입구에 설치하는 열 감지 테스터를 최고가 제품으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통상 중간 정도 기능을 갖춘 기기로도 충분하지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지방교육재정이 넘치면서 나타나는 진풍경이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표에 민감한 세법은 앞다퉈 개편을 약속하면서도 정작 수십 년째 이어져 바로잡아야 할 세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내국세의 20.79%를 지방교육청 예산으로 자동 배정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64조 3,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20.8% 급증한다. 최근 5년간 유·초·중·고교 학생은 8%가량 줄었는데도 교부금은 5년 전(44조 7,000억 원)에 비해 50%나 불어났다. 교부금은 지난 1972년 내국세 중 11.8%를 초·중·고등학생 교육에 투자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고 문재인 정부 들어 지방분권을 내세우면서 20.79%까지 확대됐다. 재정 당국을 중심으로 세수가 증가할수록 교부금 규모가 자연스레 커지는 구조를 50년이 지난 지금은 바꿔야 한다는 시각이 많지만 지방 교육청의 반발이 무서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돼버렸다. 심지어 교부금은 초·중·고교 외에 다른 용처 사용도 불가능해 재정난을 겪고 있는 지방대학 문제는 남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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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예산정책처도 최근 “학생 수 감소를 고려하면 정부 재정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교육교부금 규모의 적정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전면 재검토 필요성을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는 “국세 수입의 40%가 지방으로 가기 때문에 세수가 늘어도 정작 쓸 돈은 많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20년이 넘도록 세계에서 최고 세율을 기록하는 상속세제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상속세는 집값 급등으로 인해 재벌들만의 이슈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에게도 직접적으로 다가오게 됐다. 통상 10억 원이 넘는 집을 상속받으면 상속세를 내기 때문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상속세 과세체계 개편 방안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으나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조세재정연구원의 용역보고서에는 현재 최대 50%(최대주주 할증 포함시 60%)인 상속세율 완화에 대해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반대했다. 집권 여당을 중심으로 ‘부의 대물림’을 완화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강한 탓이다. 기재부는 상속세 체계를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방안 역시 “중장기 검토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올해 조세소위 논의가 물 건너 간 셈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8월 “다른 국가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법인세·상속세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인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재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 25%는 OECD 38국 중 여덟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경쟁 국가에 비해 높은 상속세와 법인세 부담은 기업 환경과 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기업 활력을 떨어뜨린다.

매년 반복되는 비과세 감면 연장 조치로 인해 보다 많은 납세자에게 세 부담을 낮춰준다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원칙도 어느새 사라졌다. 대선 후보들은 근로소득자 중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가 37%나 되는 문제를 포함해 세입 확충 방안은 외면하고 있다. 소득세의 경우 현 정부에서만 40%, 42%, 45%로 꾸준히 올리는 핀셋 증세를 했고 민심 갈라치기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징벌적 과세가 조세 경쟁력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는 “웬만한 사람이 다 부담을 갖게 되는 상속세는 20년째 체계가 그대로인데 세수만 더 걷으려고 운영하는 건 잘못됐다”며 “적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국민 동의를 얻어 고쳐야 하는데 그럴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선심성으로 깎을 생각만 한다”고 꼬집었다.


세종=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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