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로열더치셸







유럽에서 자동차를 빌려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노란색 가리비 로고가 보이는 주유소를 찾은 적이 있을 것이다. 로고 색깔 때문인지 유독 눈에 띄는 이 주유소에서 파는 기름은 ‘세븐 시스터스(세계 7대 석유 회사)’ 중 하나인 로열더치셸에서 만든다. 로열더치셸의 역사는 1833년 극동 지방에서 가리비를 수입해 팔던 영국 런던의 골동품 가게에서 시작된다. 석유 운송 사업에 손을 대면서 커진 이 가게는 1897년 사명을 셸트랜스포트앤드트레이딩으로 바꿀 때는 유조선으로 대량 운송하는 회사가 됐다. 셸은 1907년 세계 최대 석유 회사인 스탠더드오일에 대항하기 위해 네덜란드 석유 회사인 로열더치석유와 합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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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더치셸은 1995년 북해 유전의 원유 채굴 장비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환경 단체인 그린피스의 공격을 받아 세계 10대 악덕 기업 중 1위로 선정되는 수모를 겪었다. 채굴 장비의 심해 폐기를 시도하다가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혀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고 소비자 불매 운동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후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 정보공개, 정치 중립, 부패 추방 등을 내세우며 대대적인 위기관리 경영에 나섰다. 이 회사는 1960년 윤활유를 생산하는 한국셸석유를 설립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로열더치셸이 본사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영국 런던으로 옮기고 사명도 ‘셸’로 바꾸려 한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본사 이전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네덜란드가 유럽연합(EU) 거주자가 아닌 해외 주주들에 주는 배당수익에서 15%의 배당세를 미리 떼는 데 대한 불만이다. 다른 하나는 네덜란드 법원이 로열더치셸에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라”고 명령했는데 이를 실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세금과 무리한 스케줄의 탄소 중립을 좋아할 기업은 없다. 한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온갖 규제의 족쇄를 견뎌내는 것도 힘겨운데 탄소세 도입 등의 증세마저 현실화한다면 마지막 남은 경영 의욕도 사라질 것이다. 기업들이 해외로 떠나는 것을 막으려면 탄소 중립 속도를 조절하고 과감한 규제 혁파에 나서야 한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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