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사무직 노동자 중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전체의 40%에 달한다고 한다. 같은 조사에서 영국인들은 10명 중 6명이 외롭다고 응답했다. 영국 시민 4분의3은 이웃의 이름을 모를 정도로 서로 단절된 삶을 산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결국 사회적 단절이 원인인 경우가 많은데, 이에 따른 정신적 고통이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는 수준으로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결국 영국 정부는 2018년 외로움 담당 장관을 신설해 이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기에 이르렀다. 모두 코로나19 확산 이전의 얘기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노리나 허츠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세계번영연구소 명예교수는 신간 ‘고립의 시대’에서 현대인들이 고립된 섬에 살고 있었으며, 코로나19는 이를 부채질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인간을 외롭게 만드는 것은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과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라고 그는 주장한다.
책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일상 곳곳의 모습이 어떻게 사람들을 원자화하고, 외로움을 야기하는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외로움을 가족·배우자·친구 등 일상적으로 교류하는 이들로부터 무시당하거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 기분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동료 시민, 고용주, 마을 공동체, 정부로부터 지지와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할 때도 외로움을 느끼며,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배제된 느낌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으로 눈길을 돌리면, 일감이 생길 때마다 임시적으로 계약하며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안정적이지 못한 근무환경 때문에 소외당하고, 업무 메일이나 메신저로 소통하며 정서적 교감 없는 건조한 말만 주고 받는 사무직 근로자들도 고립감을 느낀다. 재택근무 역시 면대면 상호작용 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 탓에 노동자들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심화시킨다. 치안 등을 이유로 소득 수준에 따른 배제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시의 구조는 공동체를 파괴한다. 외로움은 돈벌이가 되기도 한다. 기업은 친절함을 탑재한 인공지능(AI) 비서와 로봇 동반자를 출시해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을 공략한다.
책은 특히 ‘초연결사회’ 속에서 외로움이 만들어지는 양태에 주목한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라는 비대면 형태로 이뤄지기에 몸의 움직임과 접촉, 냄새 등 미묘한 신체적 단서를 배제한 채 이뤄진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각종 뉘앙스가 사라지다 보니 오해가 생기기 쉽고, 사람 사이의 유대도 약해진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전 세계 단위의 연결은 외로움의 증폭 속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였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인기가 없거나 집단으로부터 거절당한 개개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며, 모두가 친구인 세상에 자기만 친구가 는 듯한 두려움 속으로 사람들을 빠뜨리곤 한다. 비대면 소통 방식으로 인해 고립된 공간으로 내몰린 이용자들은 직접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차단당한다.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외로움의 사회적 해악은 민주주의에 대한 극심한 위협이다. 저자는 각종 연구를 인용해 외로움과 극우 정치세력의 부상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한다. 경제·사회적으로 주변부에 몰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극우 포퓰리스트들의 타깃이 된 지 오래다. 책은 민주당을 지지했다가 도널드 트럼프에게로 돌아선 미국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며 그 이유를 분석한다. 트럼프는 소외 계층을 향해 공동체를 초지일관 강조하며 소속감, 인정욕구를 파고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외부에서 온 이민자를 적대시하고 혐오하도록 만듦으로써 혼자라는 기분을 달래는 동시에 자긍심을 자극한다.
허츠 교수는 외로움을 해결하려면 공동체의 복원이 필수적이며, 자본주의 경제에 사회정의를 다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소셜미디어 기업의 유해한 행위로부터 사회를 보호할 법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는 책에서 “시민은 자신의 배역을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무심한 관찰자에서 적극적 참여자로 바꿔야 한다”며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하고, 가끔은 자신의 직접적 이익과 맞지 않아도 공동체에 가장 좋은 선택을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외로운 세기’의 해독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함께 있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메시지다.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