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동십자각] 리더의 자격





이지성 사회부 차장 engine@sedaily.com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시대를 관통하는 명문이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구에 이제야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났다며 국민들은 환호했다. 진보 진영은 ‘문재인 보유국’임을 자랑스러워했고 보수 세력은 ‘모든 국민의 대통령’에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채 3년이 걸리지 않았다. 국민 통합은 애초에 요원했다. 취임 일성으로 내걸었던 청년 일자리 정책이 삐걱댄 것이 시작이었다. 뒤이어 토끼몰이처럼 시작된 검찰 개혁은 2년 넘게 국민에게 극심한 반목과 분열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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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은 스물 여덟 차례에 걸친 대책에도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만 양산한 채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외교 분야는 낙제점도 아깝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서른 여섯 차례에 걸친 남북 공식 회담과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요란한 빈 수레로 끝났다. 정권 내내 일관되게 유지했던 반일 기조와 친중 정책은 일본의 경제 보복과 중국발 요소수 사태로 정점을 찍었다.

비단 문재인 정권만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역대 대통령의 패착은 모두 ‘언더도그마(underdogma)’였다.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이 논리는 정권 내내 코드 인사, 내로남불, 인사 참사를 빚어냈다. 이분법과 흑백론으로 무장한 참모에 포위된 대통령은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성과만 안긴 채 초라한 말로를 맞이했다.

4개월여 뒤 우리 국민은 다시 대통령을 뽑는다. 늘 그랬듯 정권 연장을 내세운 여권 후보와 정권 교체를 주창한 야권 후보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운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찾아볼 수 없다. 당선되기 위한 능력은 출중한데 당선 이후의 역량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리더를 뽑은 경연장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

지금의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리더십은 포용과 협치다. 동네 동장을 뽑거나 아파트 입주자 대표를 선출할 때도 리더십은 중요하다. 하물며 대통령 선거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자리임에도 온갖 네거티브 전략만 난무한 채 퇴행하고 있다.

‘표퓰리즘’의 동의어는 무책임이다. 청년과 여성·노인 정책도 국정의 중요한 분야이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안보가 득표에 유리하니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청년층 표가 필요하다고 무작정 벤처기업을 찾아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유력 대권 후보 누구도 차기 대통령의 시대정신인 포용과 협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우리 국민은 이제 차선 내지 차악으로 리더를 뽑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우리는 언제까지 깐부를 희망하며 내 편과 네 편을 갈라쳐야 하는가.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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