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겹쳤다. 더불어민주당은 3주간의 매머드 선거대책위원회 실험(?)을 접고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칼을 넘겼다. 전권을 쥐고 선대위를 수술하라는 것이다. 수술마저 실패하면 민주당의 대선 싸움 결과는 뻔하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민주당은 그만큼 위기감이 높다. 이 후보가 22일 취업준비생, 워킹맘, 신혼부부, 청년 창업가 등 4명의 청년들과 함께 연 전 국민 선대위에서 ‘반성’이라는 표현을 열 한 차례나 언급할 정도로 자세를 낮춘 이유다.
국민의힘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후보 선출 보름이 지나 이른바 ‘3김(金·김종인·김병준·김한길)’ 선대위의 핵심 인물들을 임명하면서 선대위 출범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진행이 더디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참여에 확답을 주지 않으면서 아직 매듭을 짓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국민의힘도 선대위 구성의 첫 단추를 낀 만큼 두 거대 양당의 대선 싸움은 점점 중원을 향하면서 일합을 앞두고 있다.
사실상 첫 싸움의 결과는 앞으로 2~3주의 여론 향방이 좌우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미 실패를 맛본 민주당의 선대위 혁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정체·하락 국면을 끝내고 반등의 머리를 들고 있는 지지율은 다시 고꾸라질 수 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선대위 출범에도 변곡점에 위치한 지지율이 우상향의 방향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역시 우하향으로 바뀐다. 민주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정말 중요한 2~3주의 시간”이라면서 “선대위 수술에 성공하느냐, 아니면 제대로 된 선대위를 출범시키느냐의 제대로 된 일합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도 두 거대 정당의 심장을 뛰게 하고 있다. 지난 19~20일 전국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해 내놓은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40%, 이 후보 39.5%로 0.5%포인트 차이의 박빙 판세가 나왔다. 야권 경선이 끝난 11월 1주에는 윤 후보가 이 후보를 12.1%포인트, 2주 차에는 13.2%포인트 앞섰는데 이날 지지율 격차가 0%포인트대로 좁혀진 것이다.
지난 보름간 두 후보가 보인 행보가 대선 판을 흔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위 대장동 의혹에 발이 묶여 있던 이 후보는 지난 2주간 주식, 교육, 소상공인, 아동 학대, 반려동물 진료비 등 민생과 밀접한 공약을 쏟아냈다. 이 후보는 국가재정법 위반 소지까지 감수하며 10조 원이 넘게 드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추진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정책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메시지를 낸 것이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진단이다.
반면 윤 후보는 선대위 인선을 두고 2주간 야권 인사들과 줄다리기를 하면서 국민적 피로감을 키웠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당이 더 국민의 마음을 잡는 선대위를 만들 것인가에 승패가 달렸다.
실패를 맛본 민주당의 움직임은 일단 발 빠르다. 더 큰 쇄신에 돌입했다. 지지율이 회복세지만 여전히 청년 민심은 돌아오지 않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완전히 털어내지도 못했다. 이 후보부터 전방위 사과에 나서며 쇄신을 약속했다. 이 후보는 “대장동 문제와 관련해서 ‘70%나 환수했다’ ‘거대 이권 사업에서도 사적 이익을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점만 주장했다”고 사과했다. 청년층을 향해서도 “좌절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는 상황을 만든 데 대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민의힘도 선대위 인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양수 의원은 선대위 수석대변인, 윤한홍 의원은 전략기획부총장, 박성민 의원은 조직부총장에 임명됐다.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의 임명은 ‘원톱’ 총괄선대위원장에 내정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동의한 인사다. 윤 후보는 “당 전체가 힘을 합쳐서 실제로 발로 뛰는 선거 조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후보는 선대위 발족이 예정된 다음 달 6일까지 비서실장과 실무를 담당할 본부장급을 순차적으로 임명할 예정이다. 선대위는 DJ(김대중)계인 김한길 전 민주통합당 대표를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해 중도 확장의 큰 발판을 마련한 상황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두 후보가 선대위 인선을 두고 재차 내홍에 휩싸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 후보는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아직까지 구체적인 안을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선대위 수술 작업이 만만치 않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윤 후보도 김 전 위원장과 인사의 실타래를 풀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다. 윤 후보는 이날 김 전 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최고위원회에 상정하지 못했다. 야권에 따르면 전날 김 전 위원장이 윤 후보가 발표한 김병준 상임위원장 등에 대한 인선에 부정적인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측근인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도 기자들을 만나 “김 전 위원장이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걱정을 좀 하시면서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겠다고 하셨다”며 이 사실을 확인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두 후보 모두 잘해서 지지율이 오르는 상황이 아니라 서로의 실책으로 점수를 얻는 양상”이라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판단을 못하면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