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신변보호 요청 다양해지는데…112신고·순찰에 집중하는 경찰

보호시설·스마트워치 등 10여개 중

112등록 38%·맞춤순찰 28% 쏠려

"더 많은 예산·인력 배정해야" 지적

데이트 폭력 피해로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하고 도주했다가 검거된 30대 피의자가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 실질 심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데이트 폭력 피해로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하고 도주했다가 검거된 30대 피의자가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 실질 심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서울 중구 오피스텔에서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이 전 남자 친구에게 무참히 살해된 가운데 경찰의 신변 보호 조치가 피해자들의 요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해자와의 관계, 범죄 종류에 따라 피해자들이 필요로 하는 보호 조치가 다르지만 경찰의 신변 보호는 아직도 112 신고와 순찰 등에 집중돼 있다.



23일 한국경찰학회보 등에 따르면 경찰이 현재 시행하고 있는 신변 보호 조치는 보호시설 격리, 신변 경호, 맞춤형 순찰, 112 등록, 스마트워치 대여, 폐쇄회로(CC)TV 설치 등 10여 가지에 이른다. 피해자들이 필요로 하는 신변 보호 조치는 가해자와의 관계, 범죄 종류에 따라 달랐다. 가해자와의 관계가 전·현 애인인 경우 스마트워치(21.6%)와 신변 경호(21.0%), 전·현 배우자인 경우엔 스마트워치(26.7%)와 임시 숙소(17.1%)를 가장 선호했다. 범죄 종류별로는 살인(미수) 사건 피해자라면 경찰의 직접 신변 경호(26.2%)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범죄는 112 등록(23.6%) 외에도 신변 경호(15.4%) 및 스마트워치 지급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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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찰의 신변 보호 조치는 피해자의 요청에 맞게 다변화하기는커녕 112 등록(38.1%)과 맞춤형 순찰(28.4%)에 집중돼 있다. 신변 보호 요청 피해자 3명 중 2명이 가해자와의 관계가 전·현 애인과 배우자임을 고려하면 피해자 다수의 필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의 신변 보호 조치는 2016년에 비해 2019년에는 맞춤형 순찰과 112 등록이 3배 넘게 늘어난 반면 신변 경호는 6분의 1, 보호 시설 격리는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올 8월 제주도에서 중학생이 피살된 사건 이후 경찰이 신변 보호 체크리스트에 가해자의 범죄 경력 같은 폭력성 정도를 기재하도록 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제자리걸음이다.

그나마 스마트워치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최근 발생한 데이트 폭력 살해 사건도 스마트워치의 위치 추적 오차가 문제로 지목됐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흉악 범죄가 예상될 경우 더 강한 조치가 이뤄지는 등 피해자의 상황에 따라 신변 보호도 차등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이번 사건도 다섯 번의 신고가 있었는데 스마트워치가 미비했다면 다른 강한 보호 조치가 이뤄졌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신변 보호의 일차적 책임이 경찰에 있는 만큼 더 많은 예산이 배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신변 보호 조치는 지난해 1만 4,773건으로 5년 전에 비해 3배가량 급증했지만 피해자보호기금(1,012억 원)에서 경찰이 가져가는 예산은 불과 13억 원으로 1%대에 머물러 있다. 법무부 459억 원, 여성가족부 314억 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이 교수는 “신변 보호의 실질적인 역할을 경찰이 담당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력과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의원들은 이날 김창룡 경찰청장을 만나 인천 흉기 난동 사건과 서울 중구 신변 보호 여성 피살 사건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서영교 행안위원장은 “경찰이 국민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켜줬어야 했는데 현장에 출동해서 국민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봤다”며 “단호하게 대처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동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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