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책꽂이] 필리핀 바나나에 숨겨진 '노동 착취'

■달콤한 바나나의 씁쓸한 현실

이시히 마사코 편저, 회화나무 펴냄






우리가 평소 먹는 바나나는 대부분 필리핀에서 수입된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수출되는 바나나의 98%는 남쪽 섬 민다나오에서 생산된다. 그렇다면 필리핀의 수출용 바나나는 그 많고 많은 섬들 중에서도 유독 민다나오섬에서 재배되는 걸까. 여기에는 필리핀의 고단한 역사가 숨겨져 있다. 필리핀을 식민 지배한 미국은 주로 무슬림들과 비기독교인들이 살고 있는 필리핀 남부를 야만인들이 생활하는 미개척지로 여기고, 중북부의 기독교도들을 남부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시행했다. 토지를 잃은 원주민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해졌고, 이 빼앗긴 땅 위에는 대규모 바나나 농장이 건설됐다. 여기에 미국계 다국적 기업과 일본계 기업들이 뛰어들면서 민다나오섬의 바나나 수출이 본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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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달콤한 바나나의 씁쓸한 현실'은 수출용 바나나 농장이 민다나오섬에 나타나게 된 이유를 필리핀의 사회사(史) 속에서 찾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일본과 미국의 연구자이자 비정부기구(NGO) 실무자인 저자들은 1982년 출간된 책 '바나나와 일본인-필리핀 농장과 식탁 사이' 이후 40년 간 변화를 추적한다. '바나나와 일본인-필리핀 농장과 식탁 사이'는 바나나 생산자들이 거대 자본을 가진 다국적 기업에 의해 착취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공정무역과 유기재배 바나나에 주목하는 소비자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책은 그로부터 40년 동안 다국적 기업이 재편되고, 바나나의 주요 소비 시장이 일본에서 한국과 중국으로 바뀌는 등의 변화가 있었지만 바나나의 생산지 문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필리핀 바나나 농장의 농약 살포와 그로 인한 노동자들의 건강 악화, 토지를 소유한 농민들이 받는 낮은 임대료, 착취 당하는 농업 노동자, 노동조합 탄압 등 심각한 문제들은 여전히 민다나오섬에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과거 바나나 농장의 농약 피해와 노동자들의 실태가 폭로되자 다국적 애그리비즈니스(기업식농업·Agribusiness) 기업들은 공정무역과 유기재배 바나나 인증을 적극적으로 획득해 자사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도구로 활용해왔다고 비판한다.

저자들은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행동으로 다국적 애그리비즈니스의 운영 실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일상에서 바나나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윤리적 소비를 의식하고, 보다 실효성 있는 공적 규제를 제도화할 것을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지구 시민으로서의 연대라고 강조한다. 2만1,000원.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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