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 유죄, 유죄, 유죄

■ 찰스 M 블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흑인 청년 살해한 백인 남성 3명

유죄 판결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인종차별 심한 美 사회선 이례적

이번 계기로 정의가 뿌리내리길





아모드 아베리 살해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세 명에게 유죄 평결이 떨어졌다. 사건 발생 당시 흑인 청년 아베리는 사우스조지아의 한 동네에서 조깅을 하고 있었다. 백인 남성 세 명은 아무 이유 없이 토끼몰이 하듯 아베리를 뒤쫓았고 그를 붙잡은 뒤 일당 중 한 명인 트래비스 맥마이클이 소지한 샷건으로 세 발의 총격을 가했다. 이 끔찍한 ‘린치’ 장면은 일당 중 한 명에 의해 비디오에 담겼다.



필자에게 유죄 평결은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디로 보나 타당한 결정이었고 당연히 그랬어야 할 평결이었다. ‘승리’를 기념하고 싶은 충동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자녀를 돌보거나 배우자를 돕는 어머니를 칭찬하는 듯한 다소 쑥스러운 느낌을 불러왔다. 이번 평결은 요란스러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라 정당하고 정의롭기에 존중받아야 한다.

실상은 이렇다. 우리 사법제도는 흑인을 살해한 자경대와 경찰에게 종종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을 만큼 인종적 편견에 물들어 있다. 솔직히 법원의 판결이 다르게 나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필자는 이번 평결이 보여준 가능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종주의는 빠르게 전이되는 미국의 고질적 질환이지만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불치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박수를 치고, 환호하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정의와 평등을 중시하는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지닌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이 나라에서 흑인의 삶이 존중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너무도 자주 우리는 흑인들의 생명이 하찮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를 접하게 된다. 트레이번·타밀·에릭·브레오나의 경우가 그렇다. 오랜 시간 너무도 많은 이름이 부당하게 지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의 북소리는 그칠 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불평등에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여기서 발생하는 후유증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결엔가 흑인들의 고통에 조건화되고 그 편재성에 적응해간다.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해도 우리는 흑인의 인명 손실을 애도하거나 불공정성에 항의조차 하지 않을 만큼 망가진다. 그보다 사회적 불평등이 야기하는 후유증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기 통제 모드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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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피고인 세 명에게 떨어진 유죄 평결은 꽉 막힌 우리의 숨통을 다소나마 틔워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재판에서 불평등과 부정이 완전히 배제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후 문제의 비디오가 일반에 공개되기까지 2개월 동안 아베리를 죽인 세 명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 처음 이 사건을 담당했던 여검사는 이들의 사법 처리를 모면하게 해주려 보호막을 치다가 기소됐다. 배심원 선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배심원 12명 가운데 백인이 11명이었고 단지 한 명만 흑인이었다.

그러나 결국 정의가 우세했다. 그토록 많은 흑인 살해범들에게 면죄부를 줬던 사법제도가 이번 사건에서만큼은 흑인을 짐승처럼 뒤쫓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아베리가 살해됐다는 사실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 어떤 것도 아베리를 되살리지 못한다. 그의 어머니 가슴에 깊숙이 박힌 통증을 덜어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최소한 다른 케이스들과 달리 아픔을 가중시키지는 않는다.

이 사건이 미국의 사법제도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줬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필자는 그저 밤하늘의 유성 하나가 어둠을 가르는 광경이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를 가진다고 말하려는 것뿐이다. 유성 하나가 밤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유성은 밤을 낮으로 바꾸지도 못한다. 이번 평결은 예고 없이 나왔다. 분명히 주목할 만한 현상이지만 비슷한 일들이 뒤따를 것임을 암시하는 전조는 아니다.

그저 예외적인 가치를 깨닫고 음미하는 것, 그것이 이번 평결에 대한 필자의 시각이다. 필자는 아베리 가족과 동일한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가정에 재판부의 결정이 희망을 주기를 기원한다. 유사한 케이스에도 정의가 재연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이 극히 소수일지라도 사법적 정의가 제대로 적용되기를 희망한다.

아베리는 미래와 가정을 지닌 남성이자 한 명의 인간이었다. 세 발의 샷건 총격으로 아베리 살인범들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파괴하고 훔쳤다. 그들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를 빼앗았다. 그들은 이 세상으로부터 그를 훔쳤다. 지난 수요일의 평결은 이런 잘못을 극히 일부나마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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