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정부 예산이 정부가 지난해보다 8.9% 늘어난 607조 7,000억 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통상 국회는 매년 심사 과정에서 정부 예산안을 삭감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지난해부터는 되레 정부에 예산을 더 늘리라고 요구해 2년 연속 정부 제출 예산보다 국회 수정 예산안이 더 늘어나게 됐다. 내년 대선을 앞둔 여야가 소상공인 손실 보상 확대 등 선심성 ‘돈 풀기’에 큰 틀에서 합의한 결과다.
하지만 지역화폐 예산처럼 소상공인 지원 효과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예산이 대거 증액된 데다 코로나19 위기와 별다른 연관이 없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크게 늘어나 효율적인 예산 편성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여야 모두 내년 대선을 겨냥한 지출 사업 예산을 늘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초슈퍼’ 수정 예산안을 단독으로 의결·확정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논란이 된 경항모 예산 등을 두고 막판까지 여당과 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합의에는 실패했다. 이에 따라 내년 예산안은 민주당안(案)으로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내년 예산 총액은 올해 본예산(558조 원)보다 8.9% 증가한 약 608조 원이다. 여당은 소상공인 손실 보상 및 지원, 방역 의료 지원 등을 중심으로 예산을 크게 증액했다. 손실보상금은 현재 보상금 하한액을 1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높여 잡아 관련 예산을 3,000억 원 늘리는 등 총 2조 원을 늘렸고 최근 코로나19 변이 확산에 따라 방역·의료 지원 예산도 1조 4,000억 원 증액했다. 최근 코로나19 중증 환자 급증에 따라 중증 환자 병상 1만 4,000개를 확보하는 한편 경구용 치료제 40만 회 구입 예산도 이번 예산안에 포함시켰다. 야당은 보상금 하한액을 100만 원까지 늘리자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손실 보상 대상이 아닌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금도 대폭 확대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손실 보상 비(非)대상 업종이더라도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 200만 명을 대상으로 1%대 초저금리 자금 10조 원을 공급하겠다”며 “택시·버스 기사,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대상으로 1.5% 생활안정자금 1,000억 원을 추가 공급하고 헬스장 등 실내체육시설에 대해서도 1.6%대 저리 융자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규모도 당초 6조 원에서 30조 원 규모로 늘려 정부가 15조 원 규모의 발행을 지원할 방침이다. 정부가 지원해야 할 몫은 발행 금액의 4%인 6,000억 원이다. 그러나 최근 대다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화폐를 모두 발행하면서 소비 진작 효과가 상쇄됐고 카드 사용 금액이 클수록 더 큰 혜택을 받는 ‘역진 효과’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코로나 위기와 별다른 연관이 없는 SOC 예산도 4,000억 원 늘었다. 이른바 ‘끼워넣기’, ‘민원 예산’이 올해도 대거 반영된 결과다. 여야 의원들은 그동안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이 아닌 총 사업비 500억 원(정부 지원금 300억원) 이하 사업들을 늘려 지역구 관리 용도로 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야가 가뜩이나 빠른 재정 지출 증가 속도를 더 늘리면서 재정 건전성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더구나 내년 대선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든 정부 출범 직후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돈 뿌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실질 지출 증가율은 10%를 넘긴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 대선 이후 추경 편성은 어느 정도 기정사실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명·윤석열 두 대선 후보는 각각 기본소득, 소상공인 보상 50조 원 등 대규모 예산 사업을 대통령 당선 이후 공약으로 내건 상태다.
정부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내년 세입 여건이 개선되면서 국세 수입이 예산 증가분보다 더 늘어 재정 건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총수입 전망치는 기존 548조 8,000억 원보다 4조 7,000억 원 늘린 553조 6,000억 원이다. 수입 증가분(4조 7,000억 원)이 지출 증가분(3조3,000억 원)보다 1조 4,000억 원 더 많아 수입에서 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도 본예산 기준 55조 6,000억 원 적자에서 수정 예산 기준 54조 2,000억 원으로 다소 개선된다는 것이 정부의 전망이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라 경기회복세에 급제동이 걸렸다는 점이 변수다. 실제 공급망 충격에 오미크론 확산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10월 전산업생산지수는 전달 대비 1.9% 감소해 지난해 4월(-2%)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을 나타냈다. 소비 동향을 나타내는 소매 판매도 같은 기간 0.2% 늘기는 했지만 전달(2.4%)보다 오름세가 꺾였다. 여기에 더해 거리 두기 규제까지 다시 강화될 경우 올해 세수 과소 추계로 곤욕을 겪었던 정부가 내년에는 세수 펑크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장담한 대로 세수가 늘어날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