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美, 인도태평양 우방들과 '中 제재' 스크럼…韓 통상전략 새로 짜야

■美, 對中 포위망 안보 이어 경제로…中 배제한 새 경제협정 공식화

美, TPP 탈퇴 속 CPTPP 복귀 부담

中 가입 RCEP은 내년 발효 앞둬

인도태평양 주도권 상실 위기감

"1년내 성과" 의회 승인없이 추진

韓, 美 주도 프레임워크 협의 지속

CPTPP 가입도 계속 추진하기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16일(현지 시간) 싱가포르를 방문한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내년 초 이 지역에서 적절한 경제적 틀이 만들어지는 공식적인 과정을 시작할 것”이라며 중국을 제외한 인도태평양의 경제협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것이 협정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정확하다”고도 했다. 지난 10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인도태평양의 경제적 틀 개발을 모색하기로 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9일 러몬도 장관이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다시 거론하며 내년 초나 1분기 중에 공식 절차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강조한 것을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국 압박에 속도를 내려고 하는 의도가 드러난다. 큰 틀의 방향은 이미 정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라며 시급성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몬도 장관은 “앞으로 12개월 후에 진전을 이룬 결과물을 갖고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상 1년 내, 내년 중간선거(11월) 즈음 성과를 내겠다는 얘기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한 후 미국은 무역협정만 놓고 보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했었다. 미국의 공백 상태가 4년가량 지속돼왔던 것이다.

이 때문에 워싱턴 안팎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하루빨리 복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태평양 지역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최근 헹 스위 키트 싱가포르 부총리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은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왔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도 미국은 진화하는 이 지역의 경제구조에서 빠져 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미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미국 정부의 속도전 의지는 협정의 성격에서도 나타난다. 러몬도 장관은 “공급망과 수출통제, 인공지능(AI) 등을 다룬다. 강력한 틀이 될 것”이라며 기존 발언 내용을 재확인하면서도 “전통적인 무역협정처럼 의회 승인을 받는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의회의 승인을 받을 경우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이 가입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내년 2월 발효한다. 중국은 CPTPP에도 가입 신청을 해둔 상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행정부 차원의 발 빠른 움직임이 최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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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를 거치는 정식 무역협정에 대한 정치적 부담감도 적지 않다. 바이든 정부는 중산층 복원을 제1의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경제와 무역협정도 중산층·노동자를 위한 협정이 목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선택한 펜실베이니아 같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지역 지지자들의 생각을 대놓고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다.

그 결과 바이든 행정부는 그동안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CPTPP 재가입을 꺼려왔다. 실제로도 CPTPP에 복귀할 의사가 없음을 직간접적으로 내비쳐왔다.

하지만 이 경우 미국의 핵심 이해관계가 걸린 인도태평양 지역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게 된다. 경제협력 틀을 갖추되 국가 간 공식 협정이 아닐 경우 이 같은 문제를 비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러몬도 장관이 언급한 새 경제협력 체제의 가입 주요 후보국인 일본과 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베트남 등도 CPTPP 회원국이다. CPTPP에 가입하지 않으면서도 CPTPP와 비슷한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국 포위망 강화라는 정책 방향과도 일치한다. 앞서 미국 정부는 신장 지역에서의 인권 문제를 들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했고 대만에 무력시위를 벌이는 중국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내왔다.

특히 미국은 새 경제협력 틀을 통해 대중 제재를 위한 공조 체제를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반도체와 AI 등 신기술이 핵심이다. 미중 갈등의 핵심 고리 가운데 하나인 대만만 해도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가 있다. 러몬도 장관 역시 “우리가 반도체 장비에 대한 대중 수출 통제를 하고 있지만 동맹들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며 “AI와 사이버 보안에 관한 기술 표준과 규칙을 함께 만들어 협력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러몬도 장관이 언급한 협정이 바이든 대통령이 10월 EAS에서 발표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를 뜻한다고 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러몬도 장관이 언급한 공급망 관련 공조와 수출 통제, AI 기준 마련 모두 인태 경제 프레임워크에 포함된 내용”이라며 “지난달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방한 당시 관련 논의를 진행했으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타이 대표와 만난 후 “미국 측의 인태 경제 프레임워크와 관련해 개략적으로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러몬도 장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언급되지 않아 ‘코리아 패싱’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러몬도 장관이 지난달 취임 이후 첫 아시아 순방에서 방문했던 국가들을 언급한 것”이라며 “한국 정부도 당연히 미국과 함께 인태 경제 프레임워크를 구성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미국의 재가입 여부와 관계 없이 CPTPP 가입을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의 불참은 가입 추진 전 이미 고려됐던 사안”이라며 “미국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CPTPP 가입으로 얻을 수 있는 국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이해관계 조정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워싱턴=윤홍우 특파원·세종=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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