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상영시간 5시간 17분, 매우 길다. 시간만 보면 짧은 연작 시리즈물인가 싶지만, 극장용 영화 한 편이다. 최근 인기를 모은 넷플릭스의 6부작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의 총 러닝타임 5시간 2분보다도 길다. 너도나도 ‘숏폼·미드폼’에 열광하는 시대를 거스르는 듯한 영화는 일본의 ‘젊은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43) 감독의 2015년작 ‘해피 아워’다. 하마구치 감독을 처음 국제무대에 알린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6년만에 극장에 걸리게 됐다. 그가 올해 ‘우연과 상상’으로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 영화제 각본상을 잇따라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덕분이다.
‘해피 아워’는 30대 후반의 평범한 여성 아카리(다나카 사치에), 사쿠라코(기쿠치 하즈키), 후미(미하라 마이코), 쥰(가와무라 리라) 4명이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행복을 찾아가는 일상의 여정을 담는다. 일본 고베에 사는 네 명은 어느 날 ‘중심이란 무엇인가’라는 워크숍에 참석하게 된다. 워크숍은 서로 등을 기대고 일어서기, 머리를 맞대고 생각 읽기, 상대의 단전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기 등 여러 게임을 하면서 자기만의 중심을 잡은 뒤 이를 토대로 타인과의 균형을 맞추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화는 이 워크숍 장면만 30분 넘게 다큐멘터리 같은 분위기로 담아내면서 앞으로의 전개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음을 암시한다.
뒤풀이 자리, 워크숍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쥰은 1년째 이혼 소송 중이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하고 종적을 감춘다. 남겨진 세 사람도 이를 계기로 각자의 문제에 솔직하게 직면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솔직한 대신 중심을 확실히 잡은 네 주인공은 이혼과 외도, 그 동안 알지 못한 상처와 진실과 마주하게 되고, 서로의 고민과 불안을 털어놓는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디테일하게 따라간다. 극적 긴장감을 자아내는 구성이 없는 대신 카메라는 네 주인공의 일상을 관조적인 시선에서 꼼꼼하게 관찰한다.
긴 상영시간과 차분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지루하게 흐르지 않는다. 워크숍과 그 뒤풀이, 영화 후반부 낭독회와 그 뒤풀이 등 서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장면들은 모두 길게 이어진다. 하마구치 감독은 5시간 넘는 러닝타임 동안 이 긴 흐름을 중간에서 끊으면 영화의 감정선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긴 호흡을 영화 속에서 선보인다. 그 시간 동안 관객들 모두 영화 속 인물들, 나아가 영화를 보는 스스로를 차분하게 돌아볼 기회가 될 것이다. 스스로의 중심을 잡아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상영시간이 너무 길다고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다. 국내 상영에서는 2시간 29분 정도 지난 시점에서 10분간의 중간 휴식 시간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