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도대체 통상임금 판단 근거가 뭐냐"…'오락가락 대법'에 재계 혼란

■6,000억대 소송서 패소…현대重 '통상임금 폭탄'

대법 "경영 어려워도 신의칙 엄격 적용"…산정 범위 넓혀

GM·쌍용차는 기업 손 들어줬는데, 기아차는 노조가 이겨

일부선 "사법부 스스로 '勞 치우친 판결' 논란 키워" 비판

현대중공업 노조 집회 이미지. /연합뉴스현대중공업 노조 집회 이미지. /연합뉴스




대법원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잇따라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기업들이 비상이다.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의 연장·야간·휴일 수당, 연차 유급휴가 수당, 고용보험법의 출산 전후 휴가 급여 등 유급으로 표시된 보상 또는 수당을 계산하는 데 기초가 된다. 통상임금 산정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기업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점에서 오랜 기간 노사 쟁점이었다.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노사 간 송사가 잇따르자 대법원은 지난 2013년 12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처음으로 기준을 제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정기성(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지급) △일률성(일정 조건을 맞춘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 △고정성(업적이나 성과 등 추가 조건과 관계없이 지급)을 기준으로 삼았다. 다만 대법원은 계약 당사자 간 신뢰를 뜻하는 ‘신의성실의원칙’을 또 다른 기준으로 세웠다. 만일 기업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 등에 처했을 경우 통상임금 산정의 예외 기준으로 판단했다.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들이 16일 대법원 앞에서 통상임금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들이 16일 대법원 앞에서 통상임금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가 16일 현대중공업 노사가 9년 동안 벌인 통상임금 소송에서 근로자의 손을 들어준 배경 역시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 한국GM과 쌍용자동차가 근로자들과 벌인 소송에서는 신의칙을 인정했지만 같은 해 8월 기아가 근로자와 벌인 소송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통상임금 산정 기준의 가장 큰 뼈대를 세우고 예외 기준까지 만들었지만 재판부마다 판결이 다르게 나오는 상황이다. 경영계에서 “오락가락하는 판결에 경영 불확실성만 커진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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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주장한 ‘정기 상여금 600%, 연말 특별 상여금 100%, 명절(설·추석) 상여금 100% 등 800% 모두를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고 회사 손을 들어준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해당 상여금이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되고 신의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에 처했더라도 ‘예견 가능했거나 일시적인 것일 경우’에는 근로자들의 요구가 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추가했다. 통상임금 소송에 있어 기업들이 패소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는 분석이다.

재판부는 “2019년 2월 대법원 판례(시영운수 통상임금 사건)에 따르면 근로자의 추가 법정 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현대중공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당기순이익 등 경영지표는 2013년께까지 전반적으로 양호했고 경영 상태가 열악한 수준이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2014년과 2015년 무렵 경영이 악화되기는 했지만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은 아니며 회사의 기업 규모에 비춰볼 때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일시적 어려움”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대법원 판단에 대해 현장에서는 혼선이 커지고 있다. 회사가 경영 상태를 미리 예측하기 쉽지 않은 데다 신의칙을 적용하는 기준이 매 재판마다 달라 자의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육해상 플랜트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내서 경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걸 미리 예견했으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회사에서도 수주를 했겠느냐”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노동 분야 전문 변호사는 “이번 케이스가 앞서 승소한 GM이나 쌍용차와 다를 게 뭔지 모르겠다”며 “판사 마음대로 신의칙 적용 여부가 결정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까지 더해져 기업이 느끼는 경영 불확실성이 큰데 ‘합리적 경영’이라는 대법원의 판단 근거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사법부가 노동계로 치우친 판단을 계속하고 있다는 평가를 더 키울 수밖에 없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천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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