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말로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임기 동안 급여 정상화 등 내부 경영에 미흡했다는 직원들의 평가가 나왔다. 지난 2010년 외부 출신 김중수 전 총재 임기 동안 내홍을 겪었던 트라우마에도 절반이 넘는 직원들이 다음 총재는 외부 출신이 와야 한다고 할 정도로 이 총재에 대한 민심이 악화된 상태다.
28일 한국은행 노동조합이 이달 3일부터 10일까지 직원 7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57.9%가 후임 총재로 외부 출신이 와야 한다고 답변했다. 한은 내부 출신이 후임 총재가 돼야 한다는 응답은 26.4%에 그쳤고, 나머지 15.7%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서 진행된 조사에서는 외부 출신을 선호한다는 답변이 80%에 이른다.
통화정책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할 뿐 아니라 조직 안정성을 중시하는 한은에서 외부 출신 총재를 선호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특히 한은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이었던 김중수 전 총재가 2010~2014년 분위기 쇄신 등을 위해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면서 내부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 만큼 외부 출신 총재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배경에도 외부 출신 총재를 다시 선호하는 것은 2014년 취임해 8년 동안 임기를 지낸 이 총재에 대한 실망감이 극대화된 결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직원들이 외부 출신 총재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로 ‘내부 출신 총재에 대한 실망감(53.7%)’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정치권, 정부 등 외압에 대한 대처 능력(35.2%)’, ‘우수한 전문성(4.5%)’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내부 출신 총재를 선호하는 이유로는 ‘조직에 대한 높은 이해도(64.2%)’가 가장 많았고, ‘독립적·중립적인 통화정책 수행 가능(23.5%)’, ‘축적된 정책 수행 역량(11.2%)’ 등이 뒤를 이었다.
직원들은 지난 8년 동안 이 총재가 통화정책은 대체로 잘 수행했으나 내부 경영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통화정책에 대한 평가에는 50.2%가 B(보통), 27.6%가 A(우수)를 선택했다. 반면 내부경영에 대한 질문에서는 33.3%가 D(매우 미흡), 32.4%가 C(미흡)라고 답변해 무려 65.7%가 낙제점을 줬다.
직원들이 내부 경영 실패를 꼬집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금융 공기관 대비 미흡한 처우 개선이다. 한은 노조에 따르면 2009년 공공기관 선진화 방침에 따라 대부분 금융공기업이 임금 5%를 일괄 삭감했으나 한은을 제외한 대부분 기관이 이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20~30대 젊은 직원들은 낮은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줄지어 이탈하는 상황이다. 차기 총재가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업무에 대한 질문에서도 무려 74.7%가 급여 정상화(A매치 금융공기관 중 최상위 수준)를 선택했다.
이날 유희준 한은 노조위원장은 ‘이주열 총재는 후배 직원들을 돌아보라’라는 성명을 통해 “노조는 직원들의 유일무이한 바램인 임금 삭감분 회복을 위해 어떠한 협상 조건도 수용할 수 있음을 천명했으나 경영진은 내년도 인건비 예산에 임금 삭감분을 포함해 받아오는 데 실패했다”라며 “이 총재 재임기간 8년 동안 직원들의 삶은 궁색해지고 조직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극에 달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급여뿐 아니라 대내적으로 편파적인 인사와 무능한 내부경영, 직급 갈라치기 등으로 직원들의 불만은 한계에 달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