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盧서 文까지 말로만 '금융허브'…"정책수단 아닌 산업으로 육성을"

■리빌딩 파이낸스 2022

<상> K금융 밑그림 그리자





“역대 모든 정권이 금융을 정책 수단으로 여기고 그때그때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만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공약이 보이지 않는 대선 주자들을 보면 차기 정부도 이와 같을 가능성이 커요.”



익명을 요청한 은행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차기 정부의 금융정책에 대해 우려를 쏟아냈다. 5년 임기 정부에 따라 금융 산업 발전 전략이 매번 ‘리셋’되는 데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큰 그림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금융을 정치·산업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 독자적인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금융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권마다 공공성·규제에 방점…中에도 경쟁력 뒤처져

現 대선후보는 아예 비전도 없고 증시서도 만년 저평가

'이자 장사' 반감 걷어내고 독자 산업 걸맞은 정책 필요


◇차기 정부의 금융 비전은 안갯속=금융권에서는 역대 정부가 취임 초 금융과 관련해 청사진을 내걸었지만 대부분 흐지부지 끝났다고 입을 모았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며 자본시장통합법을 제정하는 등 각종 정책을 추진했지만 정권이 교체되면서 유야무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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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이어 이명박 정부는 산업은행 민영화 등 글로벌 수준의 상업 투자은행(IB)을 만들겠다며 금융 판을 흔드는 정책을 내걸었다. 그러나 취임 초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이 같은 정책은 힘을 잃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금융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10-10 Value up)’ 등 창조경제에 발맞춰 금융 업계의 청사진이 제시됐으나 대규모 금융 사고로 책임론이 불거졌다. 문재인 정부는 포용 금융, 디지털 금융 등에서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청사진이라고 할 만한 정책이 없는 데다 코로나19로 금융 육성 정책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현 대선 후보들 역시 독자적 사업으로서의 금융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다는 데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모두 금융에 대한 총괄적인 공약이 전무하다. 현재까지 이 후보가 소득에 상관없이 1,000만 원 이내 장기 저리 대출 지원, 윤 후보가 무리한 대출 규제의 합리적인 조정 등 포퓰리즘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 당장 금융 당국에서조차 내년에 새 정권이 출범하면 민간 금융회사에서 ‘곡소리’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中·日보다 낮은 한국의 금융 경쟁력=금융이 독자적인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국 금융에 대한 경쟁력은 부정적이다. 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IMD)이 전 세계 60여 개국의 국가 경쟁력을 평가한 ‘2021년 국가 경쟁력 종합 평가’에 따르면 기업 효율성 분야에서 한국 금융 부문은 2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34위에서 11계단이나 올랐지만 네덜란드(4위), 핀란드(5위) 등 유럽 국가뿐 아니라 중국(20위), 일본(15위)에도 뒤처진다.

IMD는 해당 국가 내에서 활동 중인 기업들이 국내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국가의 능력을 국가 경쟁력으로 본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사업을 영위하는 데 있어 우리 금융 분야의 효율성이 이웃 국가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금융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마찬가지다. 금융 산업의 성장 잠재력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낮은 편이다. 지난 24일 기준 주식시장에서 금융 업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배에 그쳤다. 정보기술(IT) 업종이 2배, 필수 소비재 업종이 1.6배, 에너지 업종이 1.1배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PBR은 현재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으로 PBR이 1배 미만이면 현재 주가 수준이 기업의 청산 가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금융권에서는 사회적으로 금융에 대한 반감·오해가 쌓인 데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수출 제조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하다 보니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이익을 내는 금융에 반감이 높다. 정부가 금융을 산업의 한 분야로 인정하기보다 공공성에 방점을 찍은 규제 중심의 정책을 펼쳐 경쟁력을 키우기도 어렵다는 주장이다.

금융을 독자적인 산업으로 보고 이에 걸맞은 규제·감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원은 “규제·감독의 주목적 달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국내 은행 그룹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비(非)은행을 포함한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규제·감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차기 정부가 금융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쯤이면 세부 사항까지는 아니더라도 금융업권별로 큰 그림이 나와 있어야 하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주식시장을 제외하고는 금융 공약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이번 정부에 산업적인 차원에서 금융의 큰 그림이 없는 게 문제였던 만큼 차기 정부에서는 금융 역시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큰 계획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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