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유력 대선 후보가 모두 공공 부문의 노동이사제 도입에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면서 요새 노동이사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과연 공공 부문에 노동이사제를 법제화하는 것이 타당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왜 이처럼 단언할 수 있을까. 이를 이론적인 측면에서 설명해보자.
노동경제학에서 마셜의 파생수요 법칙을 가르친다. 이는 현대경제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앨프리드 마셜이 어떤 특정한 산업에서 노동 수요가 임금 인상에 더욱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설명한 매우 유명한 법칙이다. 파생수요 법칙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노동 수요가 기업이 생산한 상품의 수요로부터 파생된 수요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노동 수요와 상품 시장에서의 수요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 법칙의 주요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이 자본으로 쉽게 대체될수록 노동 수요는 임금에 탄력적으로 반응한다. 둘째, 기업이 생산한 상품의 시장 수요가 가격 변화에 매우 탄력적이면 노동 수요 역시 탄력적으로 된다. 셋째, 총생산비용에서 노동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기업의 노동 수요는 임금 변화에 민감하다. 넷째, 기업이 노동 이외의 다른 생산요소에 대한 수요가 높고 이 생산요소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노동 수요는 임금 인상에 더욱더 탄력적이다. 기업 관점에서 차분히 생각해보면 파생수요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한편 파생수요 법칙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과연 어떤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기업의 노동 수요가 임금 인상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수록 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쉽고 노동조합의 요구에 기업이 순응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한전이나 한수원 같은 대부분의 공기업이 딱 여기에 해당한다. 한전이나 한수원처럼 대규모 시설 투자가 필요한 전력 시장에서는 이러한 투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이 아니고서는 민간 기업이 시장에 진출하기 어렵다. 공기업은 또한 정부가 일정 부분 독점권을 부여한다.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으로 문제가 많았던 LH공사의 경우 민간 기업이 접근하기 어려운 개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시장에 이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경쟁기업이 존재하지 않아 이들은 마치 독점기업처럼 운영된다. 소비자들은 다른 기업을 선택할 기회가 없으므로 가격을 인상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이들 기업의 시장 수요가 매우 비탄력적이라는 의미다. 파생수요 법칙에 따라 공기업의 노동 수요 또한 매우 비탄력적이어서 공기업은 이미 노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노동이사제까지 법제화한다면 노동조합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된다.
노동조합은 근로자의 이해를 대변한다. 더 높은 임금과 더 많은 고용을 요구하는 조직이다. 기업이 노동조합의 이러한 요구를 감당할 수 있으려면 꾸준히 높은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경영자는 높은 수익을 위해 투자 결정을 하면서 때로는 불확실한 위험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는데 노동조합은 고용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투자에 반대할 것이다. 근로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동이사가 경영진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경영자에게 위험을 수반하지 않으면서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신묘한 방법을 찾으라는 압력을 가하는 것 이외에 과연 공공 부문에 노동이사제를 법으로 강제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공기업의 경영자는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보다 정부의 지원을 더 많이 받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까.
노동이사 채택 여부를 전적으로 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전제하에 오히려 민간 영역에서 노동이사를 선호하는 기업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 간 경쟁이 매우 치열한 상황에서 기업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야 할 때 노동이사가 경영진과 노동조합의 가교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플랫폼 노동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는데 기존의 법률과 제도가 플랫폼 노동자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경영진과 노동자 양측의 정보에 접근성이 높은 노동이사가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주도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공기업의 노동이사에게 이러한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공 부문 노동이사제의 법제화를 찬성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