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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전선 월북사건 전말] 최소 3곳서 월북자 포착했지만…軍 오판과 경계실패로 놓쳐

軍, '새해 첫날 월북사건' 현장 조사결과 발표

탈북민A씨 민통초소 CCTV서 첫 포착됐지만

신원확인 없이 접근 경고방송 조치에 그쳐

A씨 민통초소 우회해 GOP 방향으로 이동

GOP 월책 장면 CCTV에 5번이나 잡혔지만

모니터 감시병 3명 모두 경고창 못보고 놓쳐

광망 경고음·경고등 울려 초동부대 출동했지만

특이점 발견 못하고 대대장에 보고 없이 종료

CCTV 녹화영상을 대대에도 공유해 점검했지만

녹화-저장시간 4분 차이 보정안해 중요장면 누락

2시간40분뒤 DMZ내에서 열상장비 포착됐지만

대대장 A씨를 '귀순자'로 오판...신병확보 실패

文 "경계실패 있어선 안될 일..특별점검하라"지시

지난 1일 강원도 동부전선에서 발생한 월북사건의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CCTV에 포착된 모습. 우리 당국은 지난 2020년 11월 동부전선 DMZ를 지나 철책을 넘어 귀순했던 탈북민 A씨가 이번 사건의 용의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출처=군 당국지난 1일 강원도 동부전선에서 발생한 월북사건의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CCTV에 포착된 모습. 우리 당국은 지난 2020년 11월 동부전선 DMZ를 지나 철책을 넘어 귀순했던 탈북민 A씨가 이번 사건의 용의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출처=군 당국




새해 첫날 강원도 동부전선의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발생한 탈북민 월북사건 당시 참담한 경계작전실패의 전말이 드러났다. 탈북민이 민간인통제선 인근을 지나 DMZ로 잠입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갈 때까지 최소 3곳(민통선 인근 초소, 일반전초, MDL 이남지역)에서 감시경계장비에 포착됐음에도 우리 군의 안이한 대응과 상황 오판으로 월북을 저지하지 못하고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합동참모본부가 5일 발표한 월북상황 관련 ‘전비태세검열단 현장조사 참고자료’에 따르면 지난 1일 월북한 탈북민 A씨가 우리 군의 감시장비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당일 오후 12시51분경이었다. 당시 강원도 동부지역 일대의 ‘00민통초소 관리중대 상황실'은 민통초소 방향으로 이동하는 미상인원의 모습을 폐쇄회로TV(CCTV)로 최초 식별했으나 신원 확인 없이 경고 방송을 실시하는 데 그쳤다. 미상 인원은 경고 방송을 듣고 인근 ‘OO마을’방향으로 이동했으며 이후 민통초소를 우회해 일반전초(GOP) 방향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참은 밝혔다.

이와 관련해 현장을 조사한 군 관계자는 “CCTV로 (A씨가) 포착된 지점은 민통선과 거리가 있는 초입부”라며 “해당 CCTV는 (누군가 민통선으로 접근하는) 어느 선을 넘지 않는지 길목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데 (A씨가) 가지 말아야 하는 방향으로 가서 (민통소초가 방송으로) 경고하니까 (A씨가) 순순히 응했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A씨가 민통초소를 우회해서 GOP 방향으로 이동한 지점에는 CCTV 등 감시장비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A씨처럼 민통초소만 비켜서 돌아가면 민통선 침입자를 잡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통초소를 우회한 A씨는 당일 오후 6시36분 GOP의 2중 철책을 넘었다. 2중 철책은 남측 철책(남책)과 북측 철책(북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철책은 기본적으로 망형구조로 세워져 있고, 그 상단은 철사 등을 구불구불 감아놓은 윤형철조망 형태여서 일반인들이 쉽게 넘기 어렵다. 또한 해당 철조망에는 영상감시용 CCTV카메라와 ‘광망’장치 등도 설치돼 있다. 광망은 철조망에 가해지는 압력 및 철조망 형태변형 등을 감지해 알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는 해당 철조망의 망형구조를 손으로 잡아 올라갔다. 특히 상단의 윤형철조망의 경우 이를 받치는 Y자형 브라켓 기둥을 잡고 넘어갔다. A씨가 이 과정에서 손으로 철조망을 잡아당기면서 철조망 일부 지점이 구부러지는 절곡현상이 발생했다. 광망은 이 같은 절곡현상을 감지해 즉시 경고음과 더불어 경고등을 켰다. 이에 따라 인근 소초에서 6명의 초동조치부대(소대장 포함)가 해당 지역에 도착해 철책을 점검했으나 절단 등의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

해당 철책의 CCTV카메라 3대에 A씨의 월책 상황이 포착돼 5차례나 경계모니터에 경고창(알람팝업)이 떴지만 당시 소초에서 모니터 등을 지켜봤던 3명의 경계병들은 알람팝업이 뜨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대대지휘통제실장은 이상이 없다고 생각해 상황대응을 자체적으로 종료했으며 이를 상급 부대 및 대대장에게조차 보고하지 않았다. 덕분에 A씨는 남한측 영토의 북측 끝자락인 남방한계선에 있는 GOP 인근 철책을 넘어 DMZ로 몰래 잠입할 수 있었다.

강원도 동부전선 일대의 전방 철책을 우리 군 장병들이 점검하는 모습. 철책 상단은 철사를 둥글게 휘감은 ‘윤형 철조망’ 형태로 짜여졌는데 지난 1일 월북한 탈북민 출신 A씨는 약 3m 높이의 이 같은 철조망을 넘어 우리 군을 따돌리고 북쪽으로 잠입했다. /연합뉴스강원도 동부전선 일대의 전방 철책을 우리 군 장병들이 점검하는 모습. 철책 상단은 철사를 둥글게 휘감은 ‘윤형 철조망’ 형태로 짜여졌는데 지난 1일 월북한 탈북민 출신 A씨는 약 3m 높이의 이 같은 철조망을 넘어 우리 군을 따돌리고 북쪽으로 잠입했다. /연합뉴스



관련 지침상 GOP철책 등에서 광망 알람팝업이 뜨면 관할 대대에 녹화영상 등을 공유하고 대대는 이를 기반으로 ‘상황 평가’를 실시해 어떤 이유에서 경고창 등이 떴는지 분석하게 돼 있다. 1일 오후 6시36분 당시 A씨가 GOP 철책을 건드려 광망의 알람팝업과 경고등이 켜졌을 때에도 이 같은 작업은 이뤄졌다. 다만 대대와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당시 중대상황실이 CCTV에 녹화된 화면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A씨가 월책하는 장면이 누락된 채 공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CCTV 카메라가 현장 상황을 찍는 시간과 이를 저장서버에 저장하는 시간 사이에 약 4분가량의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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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지침대로라면 소관 부대는 이 같은 녹화파일의 저장시간 시차를 보정하기 위해 실제 녹화시간과 파일 저장시간을 동기화하는 작업을 하루에 두번씩 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엔 이 같은 동기화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로 인해 중대상황실이 재구성해 대대에 공유해준 영상에는 A씨가 철책을 넘는 장면은 없고 그보다 최소 4분 이전의 영상들만 담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군이 A씨의 DMZ 침투를 인지한 것은 GOP 월책 후 약 2시간 41분이 지난 오후 21시17분 무렵이었다. 당시 GOP의 열상감시장비(TOD)가 DMZ의 MDL 이남지역에서 이동하는 미상인원(A씨)의 모습을 처음 포착해 추적한 것이다. 당시 GOP 대대장은 미상인원(A씨)의 신병확보를 위해 작전병력을 순차적으로 투입했다. 그러나 해당 대대장은 처음엔 미상인원(A씨)의 귀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초기 작전을 폈다. 그가 월북사건이 아니라 귀순 사건으로 오판한 이유는 미상 인원이 포착된 당시 지형의 특성과 이동방향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군은 설명했다. 이후 우리 군은 군단·사단과 ‘상황평가'를 통해 ‘미상인원의 월북 가능성’ 등 우발상황을 고려한 작전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A씨가 이미 멀리 앞서간 상황이어서 우리 군은 따라잡지 못한 채 놓치고 말았다.

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조영수 합참전비태세검열실장이 '철책 월북 사건' 초동 조치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공동취재단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조영수 합참전비태세검열실장이 '철책 월북 사건' 초동 조치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공동취재단


결국 A씨는 우리 군을 따돌리고 MDL을 넘어 북측으로 넘어가는 데 성공했다. 우리측 감시장비를 통해 그의 모습은 당일 오후 10시49분경 MDL이북에서 재식별됐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이튿날인 2일 새벽 0시48분경 MDL 이북에서 우리측 TOD에 의해 포착됐다.

A씨가 MDL 북측지역에서 우리측 TOD에 마지막으로 포착되기 약 3~4분전인 2일 새벽 0시 43분무렵 동일 지점에서 서북방향으로 이동중인 신원 미상의 인원 4명이 우리측 TOD에 포착됐다. 그러나 A씨는 당시 이들 4명과 직접 접촉은 없었다고 우리 군은 판단했다. A씨가 해당 지점에 도착한 것은 미상 인원 4명이 나타나 서북지역으로 이동한 약 3~4분 뒤인 새벽 0시43분 무렵이고 당시 A씨는 동북방향으로 움직였다.

합참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오는 6일 합참의장 주관으로 긴급 작전지휘관 회의를 열고 검열단의 현장 조사결과를 공유하기로 했다. 또한 군단장 책임 하에 경계작전부대 임무수행 능력 향상을 위한 특별기간을 운영하기로 했다. 2월부터는 합참 차원에서 경계작전부대 임무수행 실태를 현장점검한다. 합참은 “군은 이번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절치부심의 자세로 현장과 작전부대 장병들이 정신적 대비태세를 확고히 하고 임무수행 능력과 체계를 조기에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22사단 지역에서 발생한 경계작전 실패는 있어서는 안될 중대한 문제"라며 "현장 조사에서 드러난 경계 태세 및 조치, 경계 시스템 운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군 전반의 경계 태세에 대해 특별점검을 실시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했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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