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무엇이 당신을 꿈꾸게 하나요

작가

노화는 주름 아닌 권태에서 시작

설레지 않는다면 마음이 늙는 것

우린 모두 영화 속 주인공과 같아

찬란함으로 충만한 삶 누리기를






마지막으로 설레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언제인가요. 마지막 설렘의 순간이 오늘 아침이라면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하지만 ‘설렘? 그런 감정은 사치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마지막으로 설레는 감정을 느낀 순간의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의 손을 무작정 붙들고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어집니다. 당신은 귀찮다며 제 손을 뿌리칠지도 모르지만요. 설렘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진짜 늙어가기 시작하거든요. 진정한 노화는 주름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권태로움에서 시작되니까요. 저는 얼마 전부터 독일가곡에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들을 때도 좋았지만, 한 소절씩 따라부르며 독일어를 공부하는 기쁨에 새삼스레 설레기 시작했거든요. ‘겨울 나그네’나 ‘마왕’ 같은 슈베르트 가곡을 들으며, 한 문장 한 문장 독일어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에 날개가 달린 듯,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설렘이란 그런 것입니다. 흑백 텔레비전처럼 단조롭던 세상이 갑자기 내가 사랑하는 그 대상의 출현으로 인해 4K 화질의 무시무시한 선명함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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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카르페 디엠(carpe diem·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의 시간 속으로 진입합니다. 그저 24시간 365일로 계산되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매 순간을 소중한 기쁨과 설렘으로 남김없이 불태우는 시간이지요.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을 보며 저는 여러 번 설렜습니다. 주인공이 새로운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설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앤은 자기 자신과 새로운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영화제작자인 남편 마이클과 함께 칸에 온 앤은 귀 통증이 심해 부다페스트행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다음 출장지인 파리에서 남편을 만나기로 합니다. 마이클의 사업파트너인 자크가 앤을 걱정하며 자신의 승용차로 파리까지 데려다주기를 자청하면서 뜻밖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앤은 그저 남편과 정해진 시간에 만나기 위해 파리에 가는 것이었지만, 자크는 ‘프랑스에 대해 당신이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걸핏하면 운전을 멈추고 아름다운 장소들을 보여줍니다. 자크는 앤을 미슐렝 맛집에 데려가고, 마네의 그림처럼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도 하며, 심지어 하루를 지체하여 뜻밖의 호텔에 머물기까지 하면서, 그저 ‘칸에서 파리로’ 가는 여행을 ‘길 위의 모든 장소들을 하나하나 설레는 마음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체험’으로 바꿉니다.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의 원제는 ‘Paris can wait(파리는 기다릴 수 있다)’입니다. 파리는 얼마든지 기다려줄테니,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듯 여유로운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앤은 그 뜻밖의 여행 때문에 그동안 설렘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던 삶을 돌아봅니다. 그녀는 그저 유명 영화제작자의 아내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매우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바지런한 아티스트였던 것입니다. 전시회를 하거나 책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사진을 찍는 몸짓 속에서 매일 설렙니다. 그 사진은 한없이 느긋하게 인생의 묘미를 즐길 줄 아는 프랑스 남자의 눈을 통해 비로소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자꾸만 예측불가능한 장소에 내리고, 온갖 낯선 사람을 만나고, 가는 곳마다 향기로운 음식을 맛보면서, 앤은 그동안 ‘엄마’와 ‘아내’의 삶에 갇혔던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습니다. 목적지에 빨리 가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모든 장소들조차 단지 경유지가 아닌 특별한 추억의 장소로 만드는 힘. 그것은 매순간을 향기로운 추억의 한 페이지로 만드는 우리 마음 속의 설렘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당신은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매순간을 더욱 찬란한 설렘의 시간으로 즐길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그 모든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지 말기를. 그 어떤 첫 번째 모험도 거부하지 말기를. 당신에게는 아직 더 많은 설렘의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 모든 싱그러운 ‘첫 출발’의 설렘이 아직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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