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임기 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후임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에게 정권 이양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협조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부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한 달 전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에 대한 174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승인했다. 민주당 대통령 당선인을 위해 소속 정당인 공화당과 국민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구제금융 투입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밝혔다. “나는 오바마에게 자동차 기업이 망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오바마에게 이 지저분한 일(mess)을 떠넘기지 않을 것이다.” 비록 다른 당이지만 후임자가 산뜻한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인기는 없지만 꼭 해야 할 지저분한 일을 자신이 총대 메고 처리했다는 것이다. 당시 GM 등에 대한 구제금융 투입은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미국 국민의 분노를 살 일이었지만 지도자로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도 정권 교체기를 맞고 있다. 아직 대통령 당선인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제 문재인 정부는 다음 정부가 산뜻한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지저분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행보는 이와 정반대다. 공시 가격 현실화는 예정대로 추진하되 올해 주택 보유세 산정에 지난해 공시 가격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 보유세는 동결되겠지만 내년에는 더 큰 폭으로 오르면서 다음 정부에 큰 부담이 된다. 결국 자신들의 정책 실패 책임을 다음 정부에 떠넘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을 대선 이후인 2분기부터 인상하기로 한 조치는 코미디에 가깝다. 정부는 겨울철 공공요금 인상을 피하기 위해서라지만 언제부터 정부가 계절까지 따져가며 공공요금 인상을 저울질했는지 의문이다. 공공 단기 일자리의 절반을 내년 초 집중시키겠다는 경제정책 방향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차기 정부의 운신 폭을 좁힌다.
문재인 정부가 할 일은 선거용 정책이 아니라 부동산 정책, 에너지 정책 등 여당에서조차 비판받는 정책 실패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고 떠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차기 정부가 현 정부의 실패를 뒤치다꺼리하는 데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줘야 한다.
한 가지 더 보태면 현 정부가 손 놓은 국민연금 개혁 등 주요 과제를 차기 정부가 하루빨리 결정하고 시행할 수 있도록 남은 기간이라도 관련 자료를 축적해 넘겨줘야 한다. 임기 5년 단임제 대통령제하에서 차기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으면 100일 길게 잡아야 1~2년이다. 더구나 차기 정부 출범 2년 후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