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눈덩이





- 조말선




시작은 나였어

나를 묻히고 나는 굴러간다

나는 아니야, 라고 외치는

나를 묻히며 굴러간다

너도 그랬잖아, 라고 외치는

나만 묻히며 굴러간다

옷 갈아입을 시간을 줘, 라고 외치는



나를 묻히며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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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 묻힌다

내 무덤을 내가 만든다

나도 같이 가, 라고 외치는 너에게

힘껏 눈덩이를 던진다

나는 제대로 박살난다

나에 대해서 가속도만 붙는다

나는 밤새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나는 이튿날 눈 녹듯 사라진다

미안하지만, 올해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나를 묻히고 한 해를 구를 것이다. 나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나를 밤마다 근심할 것이다. 자신을 부정하고, 상대를 탓하고, 세상의 뒤통수에 눈덩이를 던질 것이다. 새해의 다짐은 눈꽃처럼 순결하지만 새해의 마지막은 저마다 눈사람이 될 것이다. 그림자를 어쩔 줄 모를 것이다.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올해도 마음껏 굴러보자. 아무리 때 묻어도 당신은 H2O다. 한 해 동안 잘 굴러라. 건투를 빈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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