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하다, 맑고 청순하다, 곱다….
어떤 이에게는 듣고 싶은 칭찬의 수식어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커리어를 쌓아가는 데 걸림돌일 수 있다. 배우 한효주에게 그랬다. 드라마 ‘동이’, 영화 ‘뷰티 인사이드’ ‘해어화’ 등을 통해 굳어진 ‘고운’ 이미지를 그는 마냥 반길 수 없었다. 작은 공간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아직 보여줄 게 훨씬 많은 배우임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미국 드라마 ‘트레드스톤’에 출연하고, 최근 tvN 드라마 ‘해피니스’에서는 경찰특공대 전술요원도 맡았다. 그럼에도 도전 욕구는 줄지 않았다. 그래서 또 한 번의 변신을 택했다. 이번에는 거친 파도를 가르며 칼을 휘두르는 해적이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해적 : 도깨비 깃발’에서 해적단의 단주, 해랑 역을 맡은 한효주는 “해상 검술에 수중 액션까지 모든 게 새로운 도전이었다”며 “목소리와 얼굴까지 새로울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영화는 2014년 개봉해 86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2편 격이다. 235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김정훈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여자 단주가 이끄는 해적선에 육지 출신의 사연 있는 남자가 합류한다는 설정을 빼면 1편과 연결성은 없다. 전편보다 판타지, 오락물 느낌이 훨씬 강하고, 더 폭넓은 연령대를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여자 단주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은 자연스레 1편과 2편의 주인공을 비교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편의 주인공 손예진이 성공적인 연기 변신으로 호평을 받았던 터라 한효주 입장에서는 부담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효주는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다”고 강조했다. 수 개월 전부터 스턴트 훈련을 시작하고, 와이어 액션과 검술은 물론 리더 역할에 맞는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별도의 발성 연습까지 했다. 해랑의 말투와 억양, 메이크업과 장신구 하나까지 모두 그의 고민의 산물이다. 이런 노력 끝에 한효주는 단주 해랑을 조선 초기 ‘걸크러시’ 캐릭터로 만들어냈다. 해랑은 평소에는 단순하고 호쾌하지만 싸움을 할 때는 물러남이 없고, 위험한 순간에 먼저 뛰어드는 리더의 면모를 십분 보여준다.
험한 바다가 배경인 만큼 촬영은 쉽지 않았다. 몸에는 항상 멍이 들었고, 손가락에서 밴드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특히 힘든 것은 수중 촬영이었다. 한효주는 “물 속에서 촬영을 하고 나면 다음 날 아침까지 눈과 귀에서 물이 흘러 나왔다”며 “특히 추운 날 수중 촬영을 하면 체력이 정말 빨리 소진됐다”고 돌아봤다. 그럼에도 촬영장은 항상 즐거웠다고 한다. 그는 “주연 배우가 도드라지기보다는 모든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영화”라며 “많은 사람들이 열정을 쏟는 과정이 행복했고, 제가 영화의 한 파트를 맡은 배우라는 사실이 문득 문득 감사했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한효주 외에도 강하늘, 이광수, 권상우 등이 출연했다.
한효주는 쉽지 않은 여건에서 개봉을 결정한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을 당부하며 앞으로 또 다른 변신도 약속했다. “이제 여유가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요. 일하는 게 재미있어요. 어떤 장르든 소화해내고, 다양한 캐릭터를 해낼 수 있는 연기자란 평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