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할리우드 리포트] 여과 없는 진실 연기, 섹슈얼리티를 꺼내다

파워 오브 도그’의 배우 키어스틴 던스트


미주한국일보 LA본사 부국장으로 골든 글로브 어워드를 주관하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인 하은선 엔터테인먼트 전문기자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고장 할리우드에서 만난 스타들과 함께 하는 ‘하은선의 할리우드 리포트’를 온라인 연재합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필의 좌절감, 자기혐오의 대상이 바로 ‘로즈’라는 캐릭터예요.”

영화 ‘파워 오브 도그’에서 아들을 키우는 미망인 로즈 고든역을 맡은 키어스틴 던스트(39)는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다. 토마스 새비지의 원작에서는 그림자 같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던 ‘로즈’ 캐릭터가 그녀의 필터링 없는 진실을 마주하는 연기로 존재감을 증폭시켰다. 로즈가 피아노를 치는 동안 필이 민속악기인 밴조를 연주하며 그녀를 천천히 압박해가는, 영화의 흐름을 단번에 바꿔버리는 장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제인 캠피언 감독이 원했던 실재하는 로즈 그 자체다. 그녀는 “제인의 영화에는 성적 욕망이나 심리, 제도나 관습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요소 등 ‘섹슈얼리티’가 늘 숨어있다. 캐릭터에 감수성과 난해함이 있어 배우로서 열망하는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즐거워야 할 결혼식에서 위축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로즈./사진 제공=KIRSTY GRIFFIN/NETFLIX즐거워야 할 결혼식에서 위축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로즈./사진 제공=KIRSTY GRIFFIN/NETFLIX





아메리칸 시네마테크가 최근 소피아 코폴라 감독을 모더레이터로 진행한 키어스틴 던스트와의 화상 인터뷰는 그녀 특유의 발랄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코폴라 감독과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2007)로 호흡을 맞췄던 그녀는 오랜 친구에게 털어놓듯이 제인 캠피언 감독이 요구한 1920년대 여성 로즈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웃음과 함께 풀어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는 촬영장에서 가벼운 인사라도 나누면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다는 그녀는 “우리가 함께 하는 장면이 드물었고 드러내 놓고 싸우는 것도 아니어서 혼자 속으로 로즈 안의 악마성을 깨우며 필이 숨겨온 고뇌를 끄집어내야 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던스트는 여덟 살 때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 ‘허영의 불꽃’(1990)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에서 어린 흡혈귀를 연기했고 2002년부터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메리 제인 왓슨역으로 인기를 누렸다. ‘파워 오브 도그’에서 그녀가 연기한 로즈는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를 데리고 목장주 조지와 결혼한 후 카우보이 형 필로 인해 옥죄어 오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알코올에 의존하며 아름다움을 잃어간다. 그녀는 “음습하고 메마른 로즈가 되기 위해 조니 그린우드(라디오헤드 뮤지션)가 벤조를 연주하듯 첼로 선율로 만들어낸 음악을 계속 들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카우보이 필 버뱅크(왼쪽)에게 말타는 법을 배우는 로즈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사진 제공=KIRSTY GRIFFIN/NETFLIX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카우보이 필 버뱅크(왼쪽)에게 말타는 법을 배우는 로즈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사진 제공=KIRSTY GRIFFIN/NETFLIX


영화 전반에 깔린 그린우드의 어둡고 불안한 음색은 그녀의 연기에 스며들어 새 남편 조지는 물론이고 아들 피터조차 보호 본능을 느끼게 만드는 로즈를 이해하게 만든다. 피터는 죽은 아버지의 무덤가를 장식하려고 종이 꽃을 만드는 감성과 탄저균을 이용하는 명석한 두뇌를 지닌 아들이다. 그녀는 “아들과의 관계가 억지스럽지 않도록 촬영에 들어가기 전 둘만의 비밀을 만들어 공유하며 감정 이입을 이끌어냈다. ‘아버지의 자살에 대해 알면서도 방관한거야’ ‘아버지를 죽게 만든 건 너야’ 등 상황 설정을 해가며 코디와 친밀감을 쌓았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웨스턴 장르를 입고 있지만 피터를 내레이터로 하는 심리 스릴러다. 영화의 첫 장이 피터의 독백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난 엄마가 행복하기만을 바랬다. 엄마를 돕지 않으면 난 사내가 아니다. 엄마를 구할 수 밖에”로 펼쳐진다. 그리고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악의 세력에서 구하소서”라는 피터의 성경 구절 읊조림과 함께 종결된다. 영화 제목은 구약 시편 22장20절을 인용한 ‘악의 세력’을 뜻하는 동시에 원작에 등장하는 주요 모티프인 개의 형상을 한 풍광을 가리키는 이중의 의도를 지닌다.

‘파워 오브 도그’에서 결혼한 부부를 연기하는 제시 플레먼스(왼쪽)와 키어스틴 던스트는 실제로 슬하에 두 아들을 둔 연인이다./사진 제공=KIRSTY GRIFFIN/NETFLIX‘파워 오브 도그’에서 결혼한 부부를 연기하는 제시 플레먼스(왼쪽)와 키어스틴 던스트는 실제로 슬하에 두 아들을 둔 연인이다./사진 제공=KIRSTY GRIFFIN/NETFLIX


새 남편 조지 버뱅크를 연기한 제시 플레먼스는 키어스틴 던스트의 실제 연인이다. 그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느라 결혼식을 미뤘다는 그의 진중한 어투와 섬세한 연기가 감정의 균형을 잡아준다. 조지는 로즈에게 프로포즈한 후 혼자가 아니라 이제 너무 행복하다며 눈물까지 삼킨다. 이 장면은 남성성이 지배하는 카우보이 세계에서 억압된 동성애로 인해 자기고립에 빠진 필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파워 오브 도그’는 러닝타임 128분 내내 감도는 긴장감과 아리 웨그너의 관조적인 촬영으로 중단 없이 한 번의 호흡으로 영화 보기를 끝내기는 힘들다. 그래도 무한 반복이 가능한 넷플릭스로 시청하기는 더 없이 좋다. / 하은선 미주한국일보 부국장, HFPA 회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