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신변보호 받았는데...2차 피해자 10명 중 1명은 살해 당했다

신변보호 중 2차 신체피해 23.9%가 살인 관련

5년간 71건 중 7건이 살인...10건은 살인미수

영장 기각 후 보복 범죄...구속 제도 허점 심각

연구진 "피의자, 피해자 분리 조치 확대해야"

구속사유에 재범 우려 명시 주장도...시민 90% 찬성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전 여자 친구를 살해한 김병찬이 지난해 11월 29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전 여자 친구를 살해한 김병찬이 지난해 11월 29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의 신변보호(범죄 피해자 안전조치)를 받고도 2차 신체피해를 당한 피해자 가운데 10명 중 1명은 살해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발생한 ‘서울 중부 스토킹 살인'처럼 보복 살해 위협에 노출된 피해자들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체포·구속영장 기각 후 보복 범죄로 이어졌던 사례들도 드러나 피해자 보호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서울경제가 입수한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효적 가해자 조치 법제화 방안'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1년 9월말 기준) 신변보호 기간 중 2차 신체 피해 발생 사안 71건을 분석한 결과 23.9%가 살인사건(미수 포함)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보복 범죄가 기승을 부리자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가 부경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용역 보고서다.

연구진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차 피해 사례를 사건별로 분석한 결과 71건 가운데 17건이 살인(7건) 또는 살인미수(10건)였다. 경찰이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등 신변보호 조치를 취한 뒤에도 2차 피해가 발생했고, 10명 중 1명 꼴로 살해 당했다는 뜻이다. 나머지는 특수협박, 폭행, 상해, 특수상해, 강간 등이었다.




신변보호 기간 중 2차 신체피해가 발생한 사건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별로 살펴보면 연인(헤어진 경우 포함) 간 벌어진 사건이 46건(64.8%)으로 가장 많았다. 가정폭력 17건(23.9%), 기타 8건(11.3%)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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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김병찬(36)이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타인의 신변을 위협하며 쫓아다니는 행위) 끝에 살해하는 등 보복 범죄가 심각한 상황이다. 제주 중학생 보복 살인(7월), 서울 송파 스토킹 가족 살인(12월)처럼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연인의 가족까지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들도 터졌다.

체포·구속영장 제도의 허점 때문에 보복 범죄를 막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고서가 소개한 사례를 보면 지난해 1월 A씨가 자신과 교제하던 B씨를 협박·폭행한 사실이 드러났고, 경찰은 A씨가 B를 감금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전과가 있는 점을 고려해 체포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A씨는 B씨 거주지를 무단 침입했지만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고, A씨는 B씨를 성폭력 하는 등 보복을 일삼았다. 이밖에도 법원이 편의점에서 행패를 부리다 직원 신고에 앙심을 품고 재범행을 벌인 피의자, 두 차례 가정보호 처분 전력이 있는데도 다시 가정폭력을 벌인 피의자에 대해 법원이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례도 있었다.

신변보호 중 가족이 살해당했다고 호소하는 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신변보호 중 가족이 살해당했다고 호소하는 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연구진은 보복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실효적 제도가 충분하지 않다며 접근금지 명령 등의 적용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와 피의자를 물리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긴급임시조치(현장 경찰관이 가해자를 즉시 격리 및 접근 금지하는 제도)나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는 가정폭력, 아동학대, 스토킹 등 특정 사안에만 적용돼 이에 해당하지 않는 피해자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피의자 구속 사유에 피해자 보호를 명시하는 형사소송법 개정 필요성도 제기됐다. 연구진은 “현행법은 주거부정·증거인멸의 염려·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를 구속사유로 규정하고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는 구속사유의 고려사항으로만 취급하기 때문에 피해자 생명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구속사유에 ‘재범의 위험성’ 및 ‘피해자 등 위해 우려’를 독자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이 시민 26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90.2%가 이에 찬성했다.

경찰은 보고서를 토대로 가해자와 피해자 간 격리 등 임시조치 확대,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하지만 보복범죄 피의자 구속율이 25.9%(2020년 기준)로 전체 범죄자에 대한 구속율(1.2%)보다 높고, 구속 사유 확대가 피의자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법무부 등 관계 당국과 이견이 예상된다.


김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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