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의 한 여성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연녹색 모유’ 사진은 일부 산모들에게 불안감을 줬다.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모유 색깔이 변했는데 수유를 해도 되느냐는 질문이 국내 맘카페 등에서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엄마가 먹는 음식 색깔에 따라 모유 색이 바뀔 수 있다”며 “백신을 맞고 수유하면 항체가 전달돼 아기를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모유에는 생후 6개월 동안 아기에게 필요한 영양소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박테리아와 싸우는 데 도움이 되는 항체도 포함돼 있다. 특히 초유에는 많은 양의 면역글로블린A(IgA)가 포함돼 아기의 코와 목에 보호층을 형성한다.
미국모유수유학회(ABM) 공동 창립자인 루스 로런스가 쓴 책 '모유 수유: 의료계를 위한 가이드(Breastfeeding: A guide for the Medical Profession)'에 따르면 통상 전유(수유를 시작할 때 나오는 젖)는 푸르스름한 흰색을 띠고, 후유는 크림색이 도는 흰색을 띤다. 저자에 따르면 모유 색은 엄마가 섭취한 음식·약품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빨간색과 노란색 색소가 들어간 썬키스트 오렌지 소다 음료를 마실 경우 핑크 또는 핑크-오렌지색 모유가 나올 수 있다. 녹색 모유도 여러 건 보고됐다. 녹색 음료수인 게토레이, 다시마를 비롯한 해초류, 건강식품의 천연 비타민이 녹색 모유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드름 치료제로 사용되는 미노사이클린 때문에 검정 모유가 나온 사례도 있다.
정지아 매일아시아모유연구소 소장은 "엄마의 장에 있던 색소가 흡수되면서 모유를 생성하는 체액으로 흘러가서 모유의 분비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소장은 "음식물에 따라 모유 색이 다양하지만 색깔을 가지고 모유가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순 없으며 녹색 모유가 더 좋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의석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는 "모유 색이 바뀔 수 있는 요소는 매우 많다"며 "피곤하거나 비타민을 먹으면 소변 색이 바뀌는 것처럼 모유 색도 몸의 컨디션 변화 등에 따라 바뀔 수 있으나 의학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모유 수유 중이라고 해서 백신을 기피할 필요도 없다. 국내 질병관리청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는 엄마에게 형성된 항체가 모유를 통해 아기에게 전달돼 아기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모유 수유 중인 산모에게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육아 필독서로 꼽히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저자인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면 100명 중 3명 정도에서 모유가 살짝 푸른빛을 띤 초록색으로 바뀌기도 하는데 모유 먹이는 데는 문제가 없다"며 "모유가 초록색으로 나오는 것도 정상"이라고 말했다.
하 원장은 "(백신) 접종 후에 바로 젖을 먹여도 아무 문제 없다. 접종과 시간 간격, 모유 먹이는 간격을 둘 필요가 없다는 얘기"라며 "접종 후에 열이 나도, 열이 나서 타이레놀을 먹어도 모유를 먹이는 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근거 없는 루머나 우려 때문에 임산부가 백신 접종을 꺼리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의석 교수는 "모유 색이 바뀌는 게 엄청난 일이 아닌데 자극적으로 다뤄지는 게 문제"라며 "색이 변해 부담스럽거나 걱정이 된다면 유방암 등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상황에 맞춰 의사의 진료를 받아 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