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플랫폼 산업을 포함한 정보기술(IT) 산업의 신속한 분쟁 해결을 위해 ‘동의의결제도’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동의의결은 불공정 거래 혐의를 받는 기업이 합당한 자진 시정안을 내면 위법성 판단 없이 사건을 신속 종결하는 제도다. 기업의 제재 부담을 없애고 피해자들을 신속히 구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정안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면죄부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조정원은 사후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김 원장은 “동의의결은 시정 조치도, 과징금도, 고발도 없는 데다 소송으로 갔을 경우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불확실성을 모두 아낄 수 있는 제도”라며 “특히 IT처럼 변화가 빠른 산업 분야에서는 신속한 경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실례로 퀄컴의 2·3세대(2·3G) 휴대폰 칩 시장에서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2009년 과징금(2,732억 원)은 4G로 넘어간 2019년에야 확정돼 제재 실효성이 떨어졌다. 제재가 확정되기도 전에 경쟁 기업이 고사할 수도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동안 주로 대기업이 동의의결을 신청하고 사후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기업 면죄부’ 제도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비난을 우려해 기업조차 신청을 꺼리는 제도가 됐다. 2011년 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동의의결안이 확정된 사건이 단 9건에 불과한 이유다.
이에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동의의결 사후 관리 업무를 이관받은 조정원은 다양한 시정 방안 이행 점검으로 사후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김 원장은 “가령 지난해 동의의결안이 확정된 애플의 경우 이행해야 할 내용이 방대하다”며 “이행 내역을 점검하기 위해 현장에 가서 조사를 벌이거나 전문가 자문, 피해 기업 설문 조사 등을 다양하게 활용해 사후 관리의 실효성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동의의결제도의 적용 범위가 공정거래법·표시광고법에서 대리점법·하도급법·가맹사업법으로까지 확대됐다. 대리점·하도급·가맹 사건에서는 피해 기업의 신속한 구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법원에 가면 판사에게 사건을 맡겨야 하지만 동의의결을 활용하면 해당 사건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들끼리 제일 좋은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며 “동의의결제도의 범위 확대로 사회적 자원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정원은 중견 기업 등에도 동의의결제도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기로 했다. 김 원장은 “최근 동의의결 이행 관리 세부 절차를 담은 매뉴얼과 업무 처리 지침 제정이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제도가 일관성 있고 이대로라면 기업의 부담이 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동의의결 이행 절차에 관한 기업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신청하는 기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