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향해’
관객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이자 무대 위 연주자들의 다짐이기도 했다. 절망에서 희망의 조각을 찾고, 광명의 선율을 길 삼아 앞으로 나아가자는 바람, 이 ‘빛을 향한’ 여정이 지난 23일 시작됐다. 험난할 수도 있는 그 길 맨 앞에는 벨기에 출신의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가 섰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코심)의 제7대 예술감독으로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이날 취임 연주회를 통해 3년간 펼쳐질 새 여정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북돋았다. 특별한 앙코르 무대로 ‘관객과 함께’라는 포부를 음악으로 말하고, 또 보여줬다.
공연은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5장 프렐류드로 시작했다. 짧은 연주였지만, 작품 특유의 재치 넘치는 속도감과 익살스러운 표현을 충실히 담아냈다. 달아오른 무대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절정에 달했다. 이 곡은 베토벤이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떨치면서도 난청으로 힘들어하던 시기에 만들었다. 임윤찬은 ‘듣지 못하는 절망’과 ‘음악을 향한 열정’이 뒤섞인 베토벤의 감성을 건반으로 써내려갔다. 때론 한 손을 허공에 들어 올려 그림 그리듯 지휘하듯 차분한 선율을 빚어냈고, 때론 힘 실어 건반을 내리치며 묵직한 분위기를 연주했다. 어둡던 C단조가 밝은 C장조로 전환하며 시련이 희망으로 마무리되는 3악장.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협연자의 격정적인 움직임이 끝나자 객석에선 한참 동안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2부의 ‘슈만 교향곡 2번’에서는 신임 예술감독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합이 돋보였다. 이 곡은 우울증과 정신병으로 고통받던 슈만이 광명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만든 작품이다. 2악장의 명쾌한 질주와 대조에 이어 2악장의 몽환적인 분위기로의 전환, 팀파니의 강렬한 연타와 함께 장대하게 마무리하는 4악장에 이르기까지 입체적인 선율과 매끄러운 전환이 빛났다.
새해 들어 ‘음악’ 아닌 ‘논란’으로 더 많이 거론된 코심이었기에 프로그램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코심은 최근 ‘사장 낙하산 임명’과 ‘명칭 변경’으로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오케스트라 경영이나 공연 기획 경험이 전무한 사장이 선임되며 문화계 안팎에서 연일 지적이 쏟아지고 있고, ‘국립’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도록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를 두고 KBS교향악단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여전히 진행 중인 논란 속에 희망과 평안을 염원하는 이번 공연의 주제는 관객을 향한 메시지 이전에 단원들의 ‘스스로를 위한 주문’처럼 느껴졌다.
새로 합류한 외국인 예술감독에게도 음악 아닌 다른 문제로 오케스트라 이름이 오르내리는 현 상황이 당황스러울 법도 하다. 코심은 일련의 논란을 의식해 새 예술감독의 앞으로의 계획을 듣는 취임 기자간담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라일란트 감독은 이날 앙코르 무대에서 자신의 포부를 음악으로 대신했다. 연주를 끝내고 퇴장했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한 뒤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선보였다. 경쾌한 리듬에 맞춰 관객의 박수를 유도한 그는 중간중간 객석으로 몸을 돌려 지휘하며 악기(박수)의 박자와 세기를 조율했고, 관객들은 이에 맞춰 손뼉치며 함께 행진곡을 완성했다. 코심의 이날 전체 연주와 그 완성도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평가가 다르겠지만, 지휘자의 손끝 타고 울려 퍼진 힘찬 행진곡에서는 관객 모두 같은 메시지를 읽지 않았을까. 사진=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