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연금 개혁 더 늦출 수 없다…다음 대통령 취임 즉시 밀어붙여야” [청론직설]

◆김상호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저출산·고령화로 기금 급속 고갈, 후하게 설계한 잘못도

文정부 의지 없어 유야무야…개혁 손 못댄 ‘유일한 정부’

보험료율 올리고 결국 국민·공무원·군인 연금 통합해야

세금으로 연금적자 충당 그리스, 나랏빚으로 부도사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을 지낸 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가 2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연금 개혁을 더 늦출 수 없다”며 “차기 정부는 출범 즉시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오승현 기자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을 지낸 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가 2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연금 개혁을 더 늦출 수 없다”며 “차기 정부는 출범 즉시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오승현 기자









연금 개혁은 흔히 꼼짝하지 않는 코끼리를 옮기는 일만큼 어렵다고 한다.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 연금 등을 포함하는 전반적 연금 개혁의 핵심이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금 개혁이 문재인 정부 때 미뤄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을 지낸 김상호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2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연금 개혁을 하지 않은 것은 (개혁을 추진할 경우) 정권이 바뀔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0년대 초 독일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사민당은 하르츠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노동 개혁과 연금 개혁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며 “연금 개혁을 하면 표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럼에도 이제 더 늦출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며 “다음 대통령은 취임 즉시 연금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 고갈 문제가 불거진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1970년 출생아 수는 100만 6,645명, 합계출산율은 4.53명인데 2020년 출생아 수는 27만 2,337명, 합계출산율은 0.84명이다. 출생아 수가 50년 만에 거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65세의 평균 기대여명은 1970년 12.9년, 2020년은 21.5년이다. 8.6년 늘었다. 65세 남성의 경우 10.2년에서 19.2년으로 거의 두 배 증가했다. 연금 수급 인구는 늘고 연금보험료 납부 인구는 줄어드니까 연금 기금은 당연히 감소한다. 처음 연금 도입 때 보험료를 낸 것보다 급여를 많이 받도록 설계한 것도 원인이다. 가장 먼저 도입한 공적 연금은 공무원연금이다. 1960년 공무원연금 제도를 도입할 때는 경제 개발을 이끌 유능한 공무원이 필요했지만 정부 형편상 이들에게 임금을 많이 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당장 현금이 나가지 않아도 되는 연금을 많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인재 확보에 나섰다.

-국민연금도 보험료보다 수급액이 상당히 많다.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하는 국민연금은 왜 후하게 설계했다고 생각하는가.

△도입 초기에 반발이 심했다. 국민연금에 가입하느니 민간 연금이 훨씬 낫다는 주장이 많았다. 기업 입장에서는 퇴직금 부담에 더해 국민연금 보험료까지 내야 돼 불만이 높았다. 심지어 근로자들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연금을 많이 주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율도 너무 낮게 책정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국민연금을 처음 도입한 1988년 국민연금법이 정한 보험료율이 3%(회사 1.5%, 근로자 1.5% 부담)였다. 이후 1993년 6%, 1998년 9%로 오른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현재 기준 균형보험료율(납부한 보험료 총액과 받을 연금 총액이 같아지는 데 필요한 보험료율)이 25%인 것을 고려하면 아주 낮은 수준이다.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워낙 가파르기 때문에 연금 고갈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은 이미 기금이 고갈돼 세금으로 보전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18년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의 4차 재정계산 기준으로 오는 2042년 적자로 전환하고 2057년 기금이 고갈된다. 2020년 나온 국회예산정책처 추계로는 2040년 적자로 전환하고 2054년 기금이 고갈된다. 2년 만에 적자는 2년, 고갈은 3년이 각각 빨라졌다. 이는 추계에 사용된 경제성장률과 인구 전망치 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올해 추계한다면 더 앞당겨질 것이다.

-현 정부가 연금 개혁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이유를 꼽는다면.

△2018년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연금 개편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개편안의 주 내용이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네 가지 개편안을 다시 만들어 국회로 보냈지만 유야무야됐다.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금 개혁 논의는 완전 실종됐다. 현 정부의 연금 개혁이 실패한 것은 인기 영합적으로 추진한 데다 근본적으로 개혁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연금 개혁을 하지 않은 유일한 정부인가.

△김대중 정부가 1998년 국민연금 1차 개혁을 하고 노무현 정부는 2007년 국민연금 2차 개혁을 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각각 2010년과 2015년에 공무원연금을 개혁했다. 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 이후 공적 연금을 개혁하지 않은 유일한 정부다.



-연금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나라들도 있을 텐데.

관련기사



△1998년 연금 개혁에 나선 스웨덴은 상황이 우리와 비슷했다. 낮은 경제성장률과 장수화에 기인한 재정 위기를 극복해야 할 시점이었다. 스웨덴은 모든 노인에게 정액으로 지급하던 기초연금(세금으로 재원 조달)을 폐지하고 일정 소득 이하 노인에게만 선별적으로 연금을 주는 최저보장연금을 도입했다. 국민연금과 비슷한 개념의 소득비례연금의 경우 보험료율을 18.5%로 고정해 국민이 보험료율 인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스웨덴 연금 개혁의 핵심은 연금 재정 위기가 왔을 때 자동적으로 급여를 삭감하는 자동 재정 균형 장치다. 이것으로 상황 변화에 따라 기계적으로 급여를 조절하니까 고갈을 염려할 필요도 없어지고 연금과 관련해 정치적 접근을 할 이유도 사라졌다. 이른바 연금의 탈정치화가 가능해졌다.

-독일과 일본도 연금 개혁을 했다.

△독일과 일본은 처한 상황과 문화가 완전히 다른데도 두 나라 연금 개혁의 주요 내용은 똑같다. 독일은 2030년까지 최고 보험료율을 22% 이내로 묶는 상한선을 도입(올해는 18.6%)했다.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자동 재정 조정 장치를 도입해 인구 구조와 노동시장 변화를 반영해 연금액을 조정하도록 했다. 평균 수명이 연장돼 연금 수급자 수가 증가할수록 출생률과 취업률이 낮아져 가입자 수가 감소할수록 자동적으로 연금 수급액이 줄어든다. 일본도 보험료율 상한선(18.3%)과 자동 재정 조정 장치를 도입했다. 일본은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앞으로 100년간의 장기 재정 안정성을 확보했다.

-그리스는 연금 때문에 나라가 부도 위기를 맞은 적이 있는데.

△그리스는 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업군의 연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퇴직 전 임금의 100% 수준을 보장하면서 조기 퇴직 때도 감액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적자는 세금으로 충당했다. 당연히 국가부채가 증가해 재정 위기를 초래했고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했다. 이 당시 유럽연합(EU)의 개혁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

-연금 고갈 이후에는 세금을 걷어서 지급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다. 연금 개혁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기금이 고갈된 뒤 공적 연금의 급여를 지급하려면 보험료율을 엄청나게 올리거나 세금을 아주 많이 걷어야 한다. 이는 저출산으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든 상황에서 미래 세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바람직한 연금 개혁 방안은 무엇인가.

△국민연금 급여 수준은 이미 상당히 낮다. 올해 기준 40년 가입 때 임금의 43%가 보장되고 이후 매년 0.5%포인트씩 낮아져 2028년부터 40%가 적용된다. 급여 수준을 더 낮출 수는 없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급여 수준을 유지하면서 외국에 비해 매우 낮은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된다. 중장기적으로는 특수직역 연금(공무원·군인·사학 연금)을 국민연금으로 일원화해야 된다.

-특수직역 연금을 단순하게 국민연금과 합치자고 하면 특수직역 종사자의 반발이 심할 것이다. 일본은 어떻게 연금을 일원화했나.

△일본은 2012년 제도 개혁을 실시해 후생연금(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공무원과 사학 교직원도 가입하도록 했다. 꾸준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마지막으로 동일 급여를 지급하고 동일 보험료율(18.3%)을 적용하는 데까지 갔다. 우리나라도 특수직역 가입자의 특수성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 그냥 합치자고 하면 논의 자체가 어렵다. 단순히 특수직역 가입자의 급여가 왜 국민연금보다 많은가 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특수직역 연금의 보험료는 17%, 국민연금은 9%다. 특수직역의 퇴직 수당도 민간 기업의 퇴직금을 기준으로 볼 때 39%밖에 되지 않는다.

-연금 개혁 방안과 관련해 차기 정부에 조언한다면.

△여야 대선 후보들은 연금 개혁에 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라고 하는 얘기를 지금 선거 국면에서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연금 개혁에 대해서는 머뭇거리고 있다. 하지만 연금 개혁을 해야 한다. 연금 개혁은 정권 출범 초 힘이 있을 때 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못 한다. 연금 개혁은 국민에게 더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정부도 똑같이 부담해야 할 일을 해야 된다. 대표적인 것이 연금크레딧이다. 현재 정부는 2자녀 이상 출산할 경우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12~50개월 추가로 인정해주는 ‘출산크레딧’과 군 복무를 할 경우 6개월을 인정해주는 ‘군복무크레딧’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재정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크레딧 시행에 필요한 돈을 연금 기금에 넘겨주지 않고 있는데 이런 부분부터 솔선수범해야 된다.

He is…

1961년 태어나 독일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을 지냈고 현재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사회복지 제도와 재정에 관해 주로 연구해왔으며 특히 연금 제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저서로 ‘연금, 이렇게 바꾸자’ ‘경제정책론’ 등이 있다.

한기석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