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단단하고 잘 변하지 않는 돌. 돌은 초기 인류가 발견한 도구의 소재였다. 한반도의 중앙부인 백제권역에서는 석조 유물이 많이 남아 전하고 있다. 보령 납석, 익산 황등석 같은 품질 좋은 돌산지가 많았고, 돌의 물성을 이해하면서 섬세한 손기술을 지닌 장인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돌을 이용해 발전시킨 백제의 문화를 조명한 ‘백제인, 돌을 다스리다(治石)’ 전이 국립부여박물관 기획전시관에서 한창이다.
전시는 백제권의 풍부한 돌 산지 정보와 돌을 가공한 도구, 백제의 다양한 돌 조각품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투박한 듯하나 단순미가 돋보이는 절구, 도량형의 척도를 보여주는 용기와 추 등을 만날 수 있다. 백제인의 절제된 미감, 현대적 디자인과도 닿아있는 세련미를 엿볼 수 있다.
백제인은 돌은 조각했을 뿐만 아니라 조립하기도 했다. 건축 자재로 돌을 활용할 때는 오목한 홈과 솟아난 턱을 만들어 돌과 돌을 결구(結構)하게 했다. 조립용 블록과 같은 원리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부여 나성(羅城)은 작은 돌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졌다. 부여 나성에서 출토된 글씨가 적힌 명문(銘文) 성돌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제3전시실이 하이라이트다. 돌을 다스리는 백제인의 기량은 불상(佛像)과 탑(塔)에서 꽃을 피웠다. 한동안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됐던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寶物)’이 모처럼 고향으로 돌아와 완전한 모습으로 전시중이다. 하나의 큰 바위의 4면에 불상을 새긴‘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은 3D스캔과 프린팅 작업을 통해 예산군 화전리에 남아 있는 불상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발굴해 깨어진 상태로 보관 중이던 불두(佛頭)편 등을 붙여 원형을 재현해 선보였다.
야외 전시장에 있던 부여 구아리 출토 심초석을 전시장으로 갖고 들어와, 심초석과 결합되는 석재 뚜껑을 비롯해 탑 조성에서 보이는 사리장엄구의 형태와 위치 변화를 다룸으로써 탑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했다. 목탑(木塔)에서 석탑(石塔)으로 변화하는 기술발전 과정이 백제에서 시작됐음을 소개하는 영상도 흥미롭다. 백제의 탑 축조기술은 신라와 일본, 나아가 고려의 석탑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윤형원 국립부여박물관장은 “백제 초기 한성기를 거쳐 웅진기와 사비기에 이르기까지 백제 장인이 망치와 정(釘) 하나로 가공한 것들이 지금까지 옛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전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며 “많은 것이 쉽게 생산되고 사라지는 요즘 옛 모습 그대로 우리 곁을 지키고 또 앞으로도 그 자리에 남아있을 백제인의 돌이 주는 감동을 느껴 보시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과 사비고고학연구회가 공동으로 개최했다. 전시는 5월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