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정치논리 탓 예산편성 번번이 무산…2년간 해외탐사 2건 그쳐

■일그러진 에너지안보…예산도 명맥도 끊긴 자원개발

석유公 원유생산 4년뒤 1/3토막…광구 팔아도 수익 못내

'완전자본잠식' 악순환 빠져 자체 체질개선 사실상 불가

민관전문가 '정부 지원' 한목소리…"윗선서 결단 내려야"





한국석유공사가 지난 2020년 이후 탐사 시추를 진행한 프로젝트는 단 세 건에 불과하다. 국내로 좁혀보면 동해안 ‘방어 구조’ 사업이 유일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마저도 허탕 칠 가능성이 높다. 신규 사업만 42건에 달했던 2011년과 견줘보면 사실상 자원 개발의 명맥은 문재인 정부 들어 끊겼다. 그 사이 기존에 파놓은 광구의 수명이 도래하면서 공사의 원유 생산량은 차츰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공사의 ‘2022∼2026년 중장기 경영 목표’에 따르면 공사의 연간 원유 생산량은 2020년 6040만 배럴에서 오는 2026년 4360만 배럴까지 감소한다. 국내 에너지 안보는 자원 개발 사업과 공공·민간 비축 사업이라는 두 축으로 유지돼왔는데 자원 개발의 축이 허물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도 에너지 안보가 후순위로 밀리며 국내에서 사실상 유일한 자원 개발 공기업인 석유공사는 자본잠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016년 3조 5087억 원에 달했던 석유공사의 자본은 꾸준히 줄어 2020년(-1조 1409억 원)에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과거 무리하게 차입을 늘려 자원 개발에 나선 여파로 석유공사는 매년 4000억 원가량의 이자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그간에는 연간 4000억~50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낸 터라 원금은 갚지 못해도 이자 비용은 겨우 만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유 생산량이 축소되면 공사의 수익도 맞물려 감소해 빚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공사의 신규 투자 역량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신규 투자 축소→수입처 감소→재무 구조 악화→신규 투자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고착화하는 셈이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석유공사의 재무 상황은 물론 자원 안보 역량까지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석유공사가 어느 정도 수준의 원유 생산량을 유지해야 한다고 콕 집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지금처럼 생산량이 순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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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석유공사는 자력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석유공사는 자원 개발 광풍이 불던 당시 매입했던 자산을 팔아치우는 방식으로 체질 개선을 꾀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 매각가가 매입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지난해 초 석유공사는 2009년 8000억 원에 매입한 페루의 석유 회사 사비아페루를 28억 원에 매각했다. 비우량 자산을 매입하겠다는 인수자가 알짜 자산의 지분을 함께 요구하는 경우도 빈번해 매각 작업이 지연되는 일도 잦다. 광구의 자산가치가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에 팔지 않을수록 손해를 보는 것은 분명하지만 팔아도 환경 복구 비용 등을 감당해야 해 수익을 남기기 어려운 사업도 적지 않다. 석유공사의 한 관계자는 “캐나다 하베스트의 경우 매각해도 공사의 수익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전문가뿐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외부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원 개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민관 전문가가 모인 ‘해외 자원 개발 혁신 태스크포스’는 지난해 4월 석유공사의 자체 구조 조정과 정부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안을 내놓았다. 팔짱을 끼고 방관하는 사이 석유공사의 재무 구조는 물론 자원 안보 역량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민관 전문가들의 권고에도 예산 당국은 지원에 선을 긋고 있다. 용역 결과를 받아든 산업통상자원부는 기획재정부와 석유공사에 700억~800억 원 수준의 이자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결국 추가 지원 없이 예년 수준의 예산만 편성하는 데 그쳤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국과장급 실무선에서는 석유공사에 대해 일정 부분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큰 이견이 없다”면서도 “실제 예산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윗선’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다른 관계자는 “자원 개발 사업이 전 정권에서 주도한 일이다 보니 관련 공기업을 지원하는 예산 확보가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예산 편성 과정에 자원 개발을 ‘적폐’로 보는 정치 논리가 아직도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유공사의 사례뿐 아니라 정부가 그간 편성한 예산안을 보면 자원 개발에 거리를 두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는 2017년 민간 기업의 해외 자원 개발 융자 지원 예산으로 1000억 원을 편성했다. 이후 2018년에는 700억 원으로 삭감했고 2019년과 2020년에는 절반 수준인 300억 원대로 줄였다. 올해는 688억 원으로 관련 예산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2016년 전까지 ‘성공불융자’라는 이름으로 한 해에 4000억 원 넘는 예산이 편성된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가 많다.


세종=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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